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페리제독이 우라가항에 입항
카에이 6년(1853년) 6월 3일, 페리 제독이 인솔하는 4척의 아메리카 합중국 함대가 우라가(浦賀)항구에 입항했습니다.
페리제독
이때의 미국은 약 23개의 항구에서 700척의 배가 원양 포경을 하러 나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연료는 석유가 아닌 고래의 기름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미 미국의 근해에서는 고래가 잡히지 않았기에, 서서히 태평양으로 향했습니다. 당시의 증기선은, 큰 물레방아를 돌리는 외륜선(外輪船)으로, 선체의 크기에 비해 많은 석탄을 필요로 해,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나 인도양, 남태평양의 섬들에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일본에도 물과 연료와 식량을 보급 기지를 만들려고했습니다. 동인도 함대, 기함 사스케하나(サスケハナ), 사령장관 페리가 미국의 필 모어 대통령의 국서를 가지고 쇄국중인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太平の 眠りをさます 正喜撰
태평의 잠을 깨우는 쇼우키센(증기선)
たった四はいで 夜も眠れず
단 네잔의 밤에도 자지 못하고
사실 이 즈음에 외국의 배가 많이 들어왔었기에, 이번 페리의 외국 래항에, 제일 당황한 것은 일반 서민이 아니고, 막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막부는 페리의 요구를 받아 들여, 다음 해인 안세이 원년(1854년) 3월 3일에 '미일화친 조약'을 맺게 됩니다. 페리는 이 때, 곧바로 우라가항에 온 것이 아니고 류구 1에 들르고 나서, 우라가항에 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번 만이 아니고, 이전에도 3번이나 방문하고 있습니다. 당대의 류구에서는 필수품목의 자유 매매나 석탄창의 차수(借受) 등에 나하항의(那覇港)에 개항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라도항에 등장한 흑선들
당대의 류구는 사츠마 번의 아래에 있었습니다만, 원래 류구는 중국과의 교역이 번성했습니다. 사츠마 번도 그 교역의 이권을 갖고 싶어서 류구를 점령한 것이기 때문에, 류구왕국 자체를 멸망시키지는 않고, 교역의 문으로 존속시키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만일 일본이 솔직하게 개국에 응하지 않고, 전쟁이 되었을 경우에, 연료를 보급하는 기지가 근처에 필요했기에, 사츠마의 점령하로부터 개방한다고 하는 명목으로 류구의 사람들을 회유해, 미국의 지배하에 류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기대로 일본과 조약이 연결되었기에 류구와도 같은 해의 6월 17일에 '미류화친조약'이 맺어졌었습니다.
- 오키나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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