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헤이지의 란 종결
헤이지 원년(1159년) 12월 26일, 헤이지의 란이 종결했습니다.
스토쿠덴노와 고시라카와덴노에 의한 덴노 가문 내의 계승자 분쟁을 발단으로, 공가나 무가를 말려 들게 하는 형태로 싸운 호겐의 난(호겐의난)은 명 가문인 미나모토 가문, 타이라 가문에서도 세력을 나누게 해,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는 부친을,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清盛)는 숙부를 제거해야 하는 슬픈 결말을 자아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난에서 승리해 덴노가 된 고시라카와 덴노는 후지와라노 노부요리(藤原信頼)라고 하는 미소년과 놀아나며 그를 츄난고에 임명하기까지 하는 추태를 보입니다.
호겐 원년(1158년)에 니죠덴노(二条天皇)가 즉위 해, 고시라카와덴노는 법황으로 원정(院政)을 하기 시작하자, 신제(信西) 라는 승려가 권력을 얻어내기 시작합니다. 신제와 상황이 의지하는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清盛)의 힘도 갈수록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니죠덴노의 측근들은 부담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덴노의 숙부 후지와라노 츠네모리(藤原経宗), 그의 젖형제 후지와라노 코라카타(藤原惟方)등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덴노가 친정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에게 접근한 것이 신제때문에 근위대장이 되지 못했던 후지와라노 노부요리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 헤이지의 란입니다.(헤이지의 란)
헤이지의 란으로 불타는 건물
키요모리(清盛)는 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교토로 들어옵니다. 하지만 그의 군세는 훨씬 많았기에,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들의 손 안에 덴노와 법황이 있기에, '우리에게 대의명분이 있다.'라는 생각이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후지와라노 코라카타와 후지와라노 츠네모리가 갑작스레 키요모리의 편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둘과 이야기를 나눈 키요모리는 노부요리에게 명부(名簿)를 제출해, 싸울 뜻이 없으며 복종할 것을 천명합니다. 이에 노부요리가 만족하고 안심하자, 키요모리는 덴노와 법황을 빼낼 책략을 세우게 됩니다.
12월 25일의 한밤 중 남몰래 대궐에 잠입해, 여장시킨 덴노를 여성용의 우차에 태워 데리고 나가, 법황도 같은 방법으로 돌려주어, 자신의 저택에 맞아들였습니다. 게다가 덴노가 '토벌의 선지'를 내려, 일순간에 관군은 키요모리, 역도가 노부요리로 바뀌어 버립니다. 노부요리를 위시한 반란군은 미나모토노 요리마사(源頼政)를 의지해 도망쳤지만, 그도 이미 돌아선 후 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패주함으로서 헤이지의 란이 종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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