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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사카 여름의 진(1) 전초전, 카시이전투에서 반 단에몬 전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사카 여름의 진(1) 

전초전, 카시이전투에서 반 단에몬 전사




 게이쵸 20년(겐나 원년 1615년) 4월 29일, 도요토미 측의 야마토 코오리야마성(郡山城) 탈취로 시작된 오사카 여름의 진에 있어, 이즈미 남부의 카시이(樫井)로 도쿠가와 측의 아사노 나가아키라(浅野長晟)의 군세와 부딪친 반 단에몬이 전사 했습니다.



반 단에몬의 무시무시한 모습

 


 오사카 겨울의 진에서 11월 19일에 일어난 최초의 충돌로, 도요토미 측은 에타카사키(穢多崎) 성채를 빼앗겨 26일에는 이마부쿠, 시기노 전투(시기노, 이마부쿠 전투) 29일에는 바쿠로우가후치, 노다, 후쿠시마 전투(바쿠로우가후치, 노다, 후쿠시마 전투)에서도 성채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러한 오사카성주변 국지전의 승리를 보고, 포위망을 좁혀 가려고합니다. 그리고 12월에 들어가 본진을 차우스산(茶臼山)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4일에 벌어진 사나다마루 전투(사나다마루 공방전)과 5일의 타니쵸구(谷町口) 전투에서도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16일에 반 단에몬의 야습(반 단에몬 야습)으로 오사카성측이 전공을 거둡니다. 그러다 오사카성 천수각이 피탄한 것을 계기로 강화를 맺게 됩니다.


 히데요리가 아직 단념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어 4월 6일에 여러 무장에게 후시미성에 모일 것을 호소한 이에야스는 4월 12일 아들의 결혼식에 출석한 후, 슨푸에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서쪽으로 쇼군인 아들 히데타다와 함께 떠납니다. 양자는 4월 18일과 4월 21일, 연달아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오사카 여름의 진이 시작됩니다.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에, '단지 농성해봐야 전황을 유리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판단한 도요토미 측의 농성군의 오오노 하루나가(大野治長)는 선수를 치기 위해 스스로의 남동생 오오노 하루후사(大野治房)와 고토 마타베에 모토츠구(後藤又兵衛基次) 부하의 군사를 포함한 약 2,000에 야마토 코오리야마성(郡山城)을 점령하게 합니다. 여기에, 오사카 여름의 진의 포문이 열렸습니다. 계속 되어, 27일에는 이즈미의 키시와다성(岸和田城)을 공격해, 도쿠가와 측의 군사가 모인던 사카이에 불을 지릅니다. 게다가 4월 29일, 이즈미로를 가던 하루후사 부대는 카시이에서, 도쿠가와 측에 속하는 기슈(紀州)의 아사노 나가아키라 군과 부딪쳤습니다. 



카시이 전투 전개도



 이 전투에서 활약한 것이 오늘의 주역 반 단에몬 나오유키(塙団右衛門直之)입니다. 고토 모토츠구와 「코단혼(講談本)」에서 칭송받은 영웅입니다. 그 호쾌한 삶으로 인해, 많은 팬을 지닌 전국 무장입니다. 원래 오다 노부나가를 시중들던 반 단에몬은 술버릇이 나빠 오다 가문에서 쫓겨 난 뒤,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시즈가타케 칠본창으로 꼽힌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에게 관직에 받아, 아시가루를 인솔하는 대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때에 주군 요시아키의 명령인 '패전을 가장해 적을 유인할 것'을 무시해 요시아키로부터 '너는 대장의 그릇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는 나와 버립니다.


遂不留江南野水 

이러한 편안한 곳에 무심코 머물지 않고, 


高飛天地一閑鴎 

천치를 높게 비상하는 자유로운 갈매기가 되려니


반 단에몬은 이것을 가토 요시아키의 저택의 기둥에 크게 써 붙이고 사라집니다. 이에 분노한 요시아키는 반 단에몬을 '호우코우카마(奉公構)'라는 형에 처합니다. 이것은 '이 사람은 올바르지 못한 이이므로, 관직을 주지 마십시오.'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취직을 하지 못하고 료닌으로 떠돌다 오사카성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오사카성에서는 야습(반단 에몬 야습)등으로 전공을 거두며, '야습 대장 반단 에몬(夜討ちの大将 塙団右衛門)'이라고 스스로를 선전해 요시아키에게 복수아닌 복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용맹함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 성격이 어디가지 않아 이번 카사이 전투에서도 스스로 선봉을 맡습니다. 그러나, 이 날은 비가 갠 뒤 안개가 깊었습니다다. 반 단에몬의 상대가 된 아사노 부대의 카메다 타카쯔나(亀田高綱)는 전망을 좋게하기 위해 주변을 태워, 총포대를 잠복하게 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반 단에몬의 부대에 퍼부어진 총격에 몇 명의 군사가 쓰러져 갑니다. 하지만 반 단에몬은 스스로가 선두에 서서 돌격을 개시합니다. 지나친 맹공에, 카메다 부대는 후퇴해 머지않아 도착한 강의 제방을 방패로 반격합니다. 그러나, 기세를 타는 반 단에몬 부대는 이 제방도 점거해, 부대를 두 대로 나누어, 아사노군의 선봉에 큰 타격을 줍니다.


 그대로 키사이의 시가지로 돌입한 반 단에몬은 격렬한 백병전을 전개합니다만, 백병전이 되자, 차츰 수가 많은 아사노군이 유리하게됩니다. 자신있는 십자창을 휘두르며 분전하는 반 단에몬이었지만, 압도적인 수의 적군을 혼자서 무찌를 수는 없습니다. 어느덧 적병에 둘러싸여 홀로 남은 그는 크게 숨을 들이키고 종횡 무진으로 적군을 벱니다. 이에 '창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아사노 부대의 타고 스케자에몬(多胡助左衛門)은 활을 당겨 반 단에몬의 허벅지를 쏘아 맞힙니다. 무심코 낙마한 반 단에몬은 반사적으로 스케자에몬을 찔렀습니다. 스케자에몬은 활로 그 공격을 겨우 막아냈지요. 하지만 뒤에서 가까워진 야기 신자에몬(八木新左衛門)에게 창으로 찔렸습니다. 엄청나게 피를 흘리면서 신자에몬을 죽이려는 반단 에몬에 적은 숨을 삼키고 다가가지 못하다, 결국 반 단에몬이 쓰러지고 맙니다. 그는 쓰러지며 흘러나오는 피로 시를 씁니다.


南国のような夏に 命留めた者たち

남국과 같은 여름에 생명 놓친 사람들


人生って一瞬の夢のようやん

인생은 일순간의 꿈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