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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혼간지와 노부나가의 반목, 제 1차 이시야마전투의 발발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혼간지와 노부나가의 반목, 제 1차 이시야마전투의 발발


 겐키 원년(1570년) 이시야마 혼간지가 노다, 후쿠시마의 성채에 공격을 한 오다 노부나가에 대해 군사를 일으켰으니,이것이 바로 제 1차 이시야마 전투입니다.

 

 노부나가는 '제육천마왕'등 종교를 탄압했다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런데 사실 노부나가 전의 종교세력은 민중의 마음을 잡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정치에 강하게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중들은 무장해서 승병이 되어, 정신적으로만 힘을 가진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큰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노부나가가 한 것은 종교를 정치에 개입시키지 않는 정교 분리였지 종교 탄압이 아니었습니다.



이시야마 혼간지의 모습



 원래 쫓겨난 혼간지는 갈수록 무장들과 료닌(방황무사)들을 받아들여 이 즈음에는 중앙 권력과도 깊은 연결도 가집니다. 이윽고 제11대 법주 켄뇨(顕如)의 대가 되면, 이미 전국 다이묘에게 필적할 정도의 큰 세력이 되고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는 혼간지를 가로막은 것이 노부나가입니다. 노부나가가 미요시 삼인중을 제압하고, 금세 기나이를 제압하고 군자금의 제공을 요구하자, 켄뇨는 반항할 의사는 없다는 뜻으로 선뜻 5,000관이라는 큰 돈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함께 상경한 요시아키와 노부나가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미요시 삼인중등 노부나가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노부나가의 라이벌, 켄뇨!



 이 세력들이 이시야마혼간지로 숨어들어가자, 노부나가는 켄뇨에게 '이시야마혼간지를 버리고 이동하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노부나가에게 이 혼간지가 설립되어 있는 장소가 대단히 매력적이었던것도 한 몫 했을 겁니다. 이시야마 혼간지의 위치는 오사카만과 야마토강과 요도강을 접하는 가미마치다이지(上町台地)에 위치해, 셋츠, 하리마, 카와치와 접해, 기슈에도 용이하게 왕래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게다가 해운을 사용하면 세토우치에서 시코쿠까지 통하는 교통의 요소입니다. 이미 기나이를 정리한 노부나가에게, 한층 더 세력을 서쪽으로 늘리려면 이 정도 좋은 거점인 장소는 없습니다. 이 장소는 지금의 오사카성이 있는 곳입니다. 



이시야마전투 전황도 입니다



 이런 말을 듣는다고 조용히 말을 따를 종교는 거의 없습니다. 켄뇨는 드디어 '타도 노부나가'를 외치며 노부나가 포위망의 일익을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는 파문이라고 하며 전국의 혼간지 문도에게 격문을 돌렸습니다. 노부나가가 미요시 삼인중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의 진에 어마어마한 수의 혼간지 문도들이 급습해, 놀라고 있는 사이에 총을 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갑옷을 입은 켄뇨의 모습도 보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급습으로 인해 약 10년에 걸치는 이시야마 전투가 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