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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도쿠카와 이야에스의 미카와 잇코우잇키 진압

일본 전국시대;

도쿠카와 이야에스의 미카와 잇코우잇키 진압



 에이로쿠 6년(1563년) 미카와 잇코우 잇키에 참가하고 있던 나츠메 요시노부(夏目吉信)가 이에야스 측에 투항한 것을 계기로 이에야스는 잇코우 잇키를 평정하려 나섭니다.



미카와



 미카와 잇코우 잇키라고 하는 것은, 당시 , 조동종(曹洞宗)의 세력이 강했던 미카와 동부를 제외한 지역에서, 혼쇼지(本證寺)의 소라세이(空誓)를 중심으로 영주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저항한 약 반년간의 잇코우잇키입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 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에노미야지(上宮寺)의 경내에 토쿠가와의 분사를 마음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과(이 설이 정설입니다) 혼쇼지에 도망친 건달을 도쿠가와의 가신이 허락을 받지 않고 포획 했기 때문에이라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아무튼 도쿠가와측과 정토종 문도와의 사이에 무엇인가 혼란이 있던 일은 확실합니다. 



사람이 바글바글, 미카와 잇키



 에이로쿠6년(1563년)의 가을에 일어난 그 혼란을 계기로 토쿠가와의 무장이 우에노미야 소유의 창고를 덮쳐 미곡을 빼앗은 일로 일향종(정토진종)에게 불꽃이 튀어 잇키가 일어납니다. 게다가 세금이 늘어난 일과 전국시대로 성이나 주군을 잃은 무사들이 참여하여, 잇코우 잇키의 무장도 정규군에 굴하지 않을 정도가 됩니다. 게다가 도쿠가와가의 가신 중에도 상당한 수의 일향종 문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 중에서 주군 대신 종교를 택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나츠메 요시노부도 그런 가신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 세력은 폐성이 되어 있던 노바성(野場城)을 보수하고 농성하며 도쿠가와측에 저항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엔로쿠6년(1563년) 그들은 갑자기 도쿠가와측에 투항합니다. 이 나츠메 요시노부는 나중에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의 대역이 되어 장렬히 전사를 하는 그 나츠메 지로우  자에몬 요시노부(夏目次郎左衛門吉信)입니다. 



카미와다 성채 공방전



 아무튼 이에야스는 본격적으로 잇키의 진압에 나섭니다. 자잘한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잇키측에 참여하고 있었던 도쿠가와의 가신들은 확실히 주군을 공격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 이에야스의 얼굴을 보자 마자 도망가거나, 주군을 눈앞으로 하고 도쿠가와측으에 항복하는 사람이 속출해 잇키의 사기는 갈수록 낮아집니다. 엔로쿠7년(1564년)초 키미와다(上和田) 성채의 공방전은 일련의 잇키와의 전투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정확히 투구와 갑옷의 제일 두꺼운 부분에 맞았기 때문에,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이에야스 자신이 2발의 적탄을 가슴에 받기도 한 전투였습니다. 


 이에야스는 심리전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곁에 남아있는 가신들과 잇키의 무장들의 친분을 이용해 잇키에 참가하고 있는 가신들의 설득을 끈질기게 했습니다. 잇키의 세력이 갈수록 감소하는 도중, 잇키측이 오카자키성(岡崎城)으로 쳐들어가 최종 결전을 도모합니다. 하지만 이미 잇키측에는 이전과 같은 기세는 없었습니다. 이에야스는 이 최종 결전에 순조롭게 승리해 5개월에 걸친 잇코우잇키를 정리합니다. 이 사건 뒤에 일향종의 위협을 느낀 이에야스는  불탄 사원외에 남은 사원에는 개종시키는 등 일향종을 금지시킵니다. 하지만 잇키에 참여했던 가신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는 관대함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가신도 있었지요.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



 돌아오지 않았던 가신 중에 후에 이에야스의 명참모가 되는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도 있었습니다.  이 잇코우잇키 이후로 유랑의 길에 빠졌던 그 지만, 유랑의 끝에 돌아온 마사노부를 이에야스는 관대하게 맞아들이고 오히려 이전보다 중용합니다. 자신의 속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도쿠가와가 곁에 두고 말을 주고 받았던 참모였다고 합니다. 혼노지의 변 이후에 돌아온 마사노부는 전국을 떠돌며 견문을 길러 오히려 더 나은 참모가 되었다는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아무튼 이런 마사노부를 '간사하다'라며 무시하는 무장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승리하긴 했지만 혼간지의 위험성을 안 것일까요? 정토진종의 본사 이시야마혼간지(石山本願寺)가 오다 노부나가와 싸운 이시야마 전투로 혼간지는 쇠퇴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요령하던 시절에 다시금 부흥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야에스가 최후에 천하를 차지했을 때 동 혼간지를 도와 부흥하게 해, 혼간지를 분열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