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 개전(開戦)
전투의 개전
정치 문제가 해결하지 않거나 다른 영주가 중재에 들어가, 쌍방이 교섭의 장에 서는 것을 합의하지 않는 이상 영주끼리의 전쟁을 멈추는 것은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교섭을 반복해도 타협하지 못하고, 사태가 벽에 부딪혔을 때, 드디어 개전의 봉화가 오릅니다. 많은 전쟁은 쌍방이 타협을 거부해, 자기의 권익을 지키려고 했을 때에 발생하지요. 이 때, 양쪽 모두 상대에 대한 증오가 소용돌이치고 있어 전쟁을 회피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개전의 날자 정하기
공격하라!!
전투의 날, 이유를 통지하는 것을 출진의 지령(陣触れ)이라고 합니다.
덴쇼 15년(1587년) 3월 1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 정벌에 출진했고, 덴쇼 18년(1590년) 3월 1일, 오다와라 정벌에 출진했습니다. 두 번의 전투에 모두 승리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3월 1일을 길일이라 여겼습니다. 분로쿠 원년(1592년) 3월 1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쿠로다 죠수이(黒田如水)는 전투때, 9일에 승리를 거두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쿠로다 죠수이는 9일에 출진하면 전투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게이쵸 5년(1601년) 8월, 분고 공격을 9월 9일에 실시하겠다고 가신에게 전했습니다. 가신들은 죠수이에게 시급하게 공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진언했지만, 죠수이는 9일이 재수가 좋다고 했습니다. 9월 9일, 쿠로다 죠수이는 나카츠성을 출진하여 9월 13일, 이시가키바루 전투에서 오오토모 요시무네를 격퇴했습니다.
이렇게 전국시대의 무장들은 날짜 하나하나에도 본인이 운이 있다고 생각할 때 출진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수능볼 때 재수없을 까봐 '떨어졌다'라고 말을 못하게 하는데요, 이런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요?
출진의 준비; 렌카
렌카(連歌)는 참가자가 읊은 단가의 와카의 첫구에 대해서, 다른 참가자가 단가의 제4와 제5구를 읊은 노래를 가리킵니다. 렌카한 참가자들은 유대감이 깊어졌지요. 렌카는 주술의 일종이었습니다. 보통 출진 전에 렌카회를 열어, 그것을 신전에 봉납해 전승을 기원했습니다. 이것을 '출진렌카'라고 합니다. 전국시대, 렌카는 대단히 중요한 행사여서 특히 꿈 속에서 들은 노래를 읊는 것이 길조로 여겨 졌습니다.
이렇게 써서 봉납했습니다
덴쇼 6년(1578년) 11월, 미미가와 전투에 임할 때, 시마즈 요시히사는 렌카가 나오는 꿈을 꾸고 승리를 확신했다고 합니다.
討つ敵は 龍田の河の 紅葉かな
토벌하는 적은 타츠타 강의 단풍일까
또 다이에이 3년(1523년), 모리 모토나리는 꿈에서 다음 렌카를 보고 읊었다고 합니다.
毛利乃家鷲乃はを次脇柱
모리의 독수리는 와기사(오른쪽 기둥)이구나
모리의 문장은 독수리인데, 그 다음을 이을 기둥이 오른쪽 즉, 두번째 라는 것입니다. 모토나리는 차남이지요.
출진의 준비; 여성과 전승 기원의 의식
무장은 개전의 3일 전부터 처첩과의 관계를 끊고, 그 접촉을 피했습니다. 특히 산후 30일 이내의 아내가 있는 경우, 남편이 아내에게 가까워지면 몸의 더러움이 옮겨, 전사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출진식은 남성만으로, 준비도 투구와 갑옷에 몸을 싼 시동 등이 했습니다.
출진 전에는 연회가 열리고 전승의식을 행합니다. 이것은 따로 포스팅해 논 것이 있는데, 그것을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옆을 클릭하면 이동합니다(전승의식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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