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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사/역사편

쿠바 혁명사; 실패이지만 패배는 아니었던, 몬카타 병영 습격

쿠바 혁명사;

실패이지만 패배는 아니었던, 몬카타 병영 습격



 1956년 7월 26일, 쿠바의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 밝아왔습니다. 불합리한 독재와 타락해 버린 정치에 환멸을 느낀 카스트로는(풀젠시오 바티스타의 쿠데타) 자신과 뜻이 맞는 이들 200여명을 모아 산티아고 교외의 몬타나 병영을 습격하려 합니다. 몬타나 병영은 약 400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는 병영으로 기관총, 탱크, 장갑차, 최신식 소총 등의 무기와 민중에게 혁명의 뜻을 알리고 적을 교란시킬 수 있는 라디오 설비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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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여 명의 카스트로의 혁명군은 그야말로 불시에 기습해 적을 제압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샷건, 라이플, 서브머신건, 권총 등 다양한 무기로 무장했습니다. 카스트로는 자신이 일하던 군사병동에서 빼돌린 푸른옷을 혁명군에게 입혔습니다. 7월 26일 새벽, 카스트로의 혁명군은 모여서 작전의 임무를 하달받았습니다. 


목표는 병영을 통제하에 두고 무기를 얻는 것 그리고 통신설비를 장악해 적에게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무기는 미리 계획되었던 조직을 통해 도시의 곳곳으로 퍼뜨리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민중봉기를 일으켜, 바티스타의 독재를 종식시키려는 것이 카스트로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4:45 AM 카스트로와 그의 동지들은 목숨을 걸고 기습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쿠바 혁명을 기념하는 몬카타 병영


6:00 AM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은 혁명군을 이끌고 조용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 여섯개의 차에 나눠 타, 마치 쿠바 서부에서 파견된 고위 관료처럼 보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첫 그룹 20명은 병영 뒤에 있는 시민 병동을 점령하고, 다음 그룹 5 명은 아우디엔시아(Audiencia: 식민시대에 설치된 고등사무재판소)를 점거하며, 나머지는 카스트로의 지시를 받아 병영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혁명은 시작부터 처참히 실패했습니다. 16대의 차량은 제각각 다른 시각에 병영에 도착하였으며, 무기를 실었던 차량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카스트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몰던 자동차에 타고있던 혁명군이 병영에 들어가기도 전에 내려, 이를 본 몬카타의 병사들이 알람을 울려버려 실패했다고 합니다.


기습은 실패로 끝납니다


 이로 인해 채 무기를 갖추지 못한 혁명군과 정부군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15명의 정부군과 3명의 경찰관이 죽고 23명의 정부군과 5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반면, 9명의 혁명군이 죽고(이들중 4명은 아군의 사격에 죽었습니다.) 18명의 반군은 시민 병동에서 잡혔으며 34명의 혁명군이 도주중에 잡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스트로는 잡히지 않고 도망치는데 성공했습니다. 카스트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5명의 혁명군이 전투 중 죽고, 남은 혁명군 중 56명이 바티스타에 의해 죽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잡힌 혁명군들은 잔인하게 고문당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반란을 도운 사람들을 찾는다며 무고한 시민들을 잔악하게 죽이고 다녔지요. 게다가 바티스타는 명령을 내려 이 공격에서 죽은 병사 1명 당 10명의 포로를 처단하게 했습니다. 이런 학살극에 쿠바 민중의 불만이 높아지자, 산티아고의 몬시뇰, 페레즈 세란테스(Perez Serantes)가 중재에 나섰습니다. 이로인해 군은 '공식적'으로는 사살하지 않고 재판에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몬카타 기습에 실패한 혁명군


 하지만 뒤에서는 당연히 카스트로를 죽이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이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카스트토를 찾았을 때 그는 한 오두막 집에서 자던 중이었는데, 이들 중 그와 대학 동기였던 페드로 사리아(Pedro Sarria)만이 그를 알아 보았습니다. 그는 카스트로의 몸을 수색하는 척 하며 절대 이름을 대지 말라고 했스비다. 이로인해 카스트로는 무사히 투옥되게 되었습니다. 피델이 체포당하자 라울을 포함한 나머지 혁명군도 항복했습니다.


 이렇게 몬카다 습격은 처참히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혁명의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7월 26일의 사건은 쿠바 민중들의 마음속으로 저항정신을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