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사;
역사가 나를 심판할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 재판(2) 카스트로의 편지
1952년 9월 26일 피델 카스트로의 세번째 재판이 있었으나, 카스트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비대장이 수석 재판장에게 쪽지를 정해주자, 그는 그것을 읽었습니다.
당시의 피델 카스트로
"피델 카스트로는 오늘 재판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그는 몸이 불편하여 오늘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날 피델에 의해 불리해진 정부는 카스트로를 강제로 재판에서 떼어낸 것이지요. 분명히 카스트로를 진찰한 의사들에게는 어떤 압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재판을 진행시키려 했습니다. 그러자 한 부인이 앞으로 나와 소리쳤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카스트로는 병든 것이아닙니다."
몬카타 공격에 참가했던 두 여인 중 하나인 멜바 헤르난데즈(Melba Hernández)는 판사석으로 걸어가 말했습니다.
멜바 헤르난데즈 여사
"존경하는 재판장님, 여기 저는 피델 카스트로가 존엄하고 명예로운 법정에 바치는 친필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세 판사는 그것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르겐시 법정 귀하
피델 카스트로 루즈는 법정 앞에서 현재의 37개의 소송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삼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밝힙니다.
1. 저들은 7월 26일의 사건에 대한 근거없는 거짓말이 드러날까 두려워 제가 재판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였으며, 그날 포로들에 자행한 끔찍한 죄 즉, 쿠바 역사상 없었던 대학살을 폭로하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오늘 나에게 병이 있기 때문에 재판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전갈을 보냈습니다만, 나는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이런 파렴치한 방법으로 감히 법정을 모욕하려 하고 있습니다.
2.우리들을 고립시키려는 저들의 행위가 비합법적이고 부당하다는 이유로 그것의 중지를 요구하는 재판부로부터의 수차에 걸친 통보와 법정이 교도소 당국에 보낸 마지막 통보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독방에 감금되어 있습니다. 이 교도소에 감금되어 있던 57일 동안, 나는 빛을 볼 수 없었으며 대화도 할 수 없었고 면회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3. 나는 탈출하려 했다는 핑계 아래 독약이나 그 밖의 여러 수단으로 나를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수차례 고발했습니다. 그 동기는 제가 이 서찰에 수차례 밝힌 대로입니다. 똑같은 위험이 다른 죄수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이례적으로 7월 26일의 대학살을 목격한 두 여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4. 나는 법정이 즉각 산티아고 의학회의 회장같은 저명하고 유명한 의사가 나를 진단하도록 명령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지정된 법정의 일원이 이 교도소에서 재판정까지의 길에 정치범들과 동행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이 서한의 구체적인 내용이 지방법조협회와 전국법조협회, 대법원에 전달되어야 하며, 이 사실을 알아야 할 법조학회에도 전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은 중요성과 범주에 비추어 볼 때 심각한 수준으로 이례적인 의무조항들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고발한 조건하에서 재판이속개된다면, 그것은 완전히 민족을 배반한 어리석고 부도덕한 광대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쿠바전체의 눈이 이 재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현 재판부는 쿠바 역사 앞에서 전 재판부의 명예나 다름없는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훌륭히 지켜나가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법정의 행위와 재판관들의 신망은 그것을 공화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것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의 꿋꿋한 행동에 대해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지고 이 문제들을 설명하는 이유입니다.
나는 만약 삶을 위해 나의 권리나 명예의 극히 일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면 천번이라도 그렇게 하고자 할 것입니다. 즉, '동굴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올바른 사상은 대군 이상의 힘을 가진다.'라는 것입니다.
피델 카스트로 루즈
1953년 9월 26일
오리엔테 교도소
추신: 멜바 헤르난데즈에게 내 이름을 서명한 이 서한을 부탁한다.
이 편지에 군인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죄수들은 법정에 출석하기 전에 철저한 수색을 받게 되었으며, 멜바 헤르난데즈는 독방에 갇혔고 피델 카스트로는 더욱 심한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정은 이 편지에 크게 영향을 받아 의사 두명을 카스트로에게 파견했고, 그가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법정으로 이송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이를 놔두지 않아 그는 법정으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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