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사;
쿠바에 덮쳐오는 연이은 독재,
풀젠시오 바티스타의 쿠데타
1952년 6월 1일 쿠바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 선거에는 세 명이 입후보 했는데, 그 중 최하위는 단연 풀젠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였습니다.
풀젠시오 바티스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군에 입대하여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독재하던 헤라르도 마차도의 정권을 1933년 9월 '중사들의 반란'을 일으켜 종식시켰습니다. 또, 그 뒤에 정권을 잡고 독재를 하던 카를로스 마누엘의 정권역시 이 반란의 여파로 무너졌습니다.
1940년 그는 쿠바 대통령에 당선되어 교육 제도를 확대하고 여러 경제 개발 정책을 펴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등 나라를 바로 일으켜 세웠고, 44년에 물러났지요. 하지만 그가 물러난 8년동안 다시 부정부패가 만연해 지자 결국 그는 1952년 3월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영웅의 귀환을 축하했으나, 이윽고 그가 타락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론, 대학 장악 및 부정 축재를 일삼은 그에게서 이미 민심은 떠났습니다.
이 쿠테타의 몇 주 뒤, 갖 대학을 졸업한 25세의 청년이 하바나의 법정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최고 권력자가 된 바티스타를 강하게 비판하며 고발했습니다.
"쿠바에 법정이 존재한다면, 바티스타는 명백히 처벌되어야 합니다.
만약 그가 처벌되지 않고 계속 국가 원수이며, 대통령, 수상, 상원의원, 군 장성, 일반사회와 군부의 수뇌, 행정권과 입법권의 실력자, 생명과 토지의 소유주로 존재한다면, 법정은 그들의 억압을 받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 얼마나 무서운 현실입니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여러분은 법복을 벗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
당대 최고 권력을 가진 독재자에 단신으로 맞선 사나이, 이 사나이가 바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입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의 의견은 무시당하고 맙니다. 게다가 쿠데타로 인해 총선마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자, 그는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쿠바에서 독재를 몰아낼 수 없음을 깨달고, 무장 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카스트로 고교생 시절 사진
1여년 동안 여기저기를 발로 뛴 카스트로는 준비를 마쳤습니다. 대부분 카스트로와 나이가 비슷한 약 200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들이 그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동생, 라울(Raul)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티아고 외곽에 있는 몬카다(Moncada) 병영을 습격해 그곳의 무기를 탈취하고 라디오로 민중에게 뜻을 전달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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