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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문화편

일본 전국시대 정치편; 오다노부나가의 천하통일에 일조한 시로와리

일본 전국시대 정치편;

오다노부나가의 천하통일에 일조한 시로와리



 덴쇼 8년(1580년) 오다 노부나가가 츠츠이 준케이(筒井順慶)에게 츠츠이가의 본성 츠츠이성(筒井城)의 철거를 명했습니다.


 교토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만난 츠츠이 준케이는 노부나가에게서 코오리야마성만을 남기고 그 이외의 다이와의  성을 철거하라는 명을 들어 본성인 츠츠이성으로 돌아옵니다. 그 뒤에 노부나가는 셋츠, 카와치에 있는 성들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려, 준케이는 즉석에서 카와치로 향합니다. 그는 한달이 안되 성의 대부분을 철거해 코오리야마성에 돌아왔습니다. 타몬인 에이슌(多聞院 英俊)은 그의 저서 「타몬인일기(多聞院日記)」에서 이 성의 철거에 대해 매우 놀라움을 표현했는데, 지금봐도 경이로울 정도의 속도로 성의 철거가 이루어진 것이지요.


성의 철거 시로와리(城割)

 성을 철거하는 것을 '시로와리(城割)'라 합니다. 말 그대로 성을 나눈다 는 것인데요. '시로와리 없이는 천하통일이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전투나 술책에만 집중 해 이런 민생과 관련된 내정책들은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아쉽지요. 시로와리 자체는 상대의 성을 점령하거나 또는 패배가 목전에 있을 때 성을 파괴하고 도망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계획적으로 실시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를 이어받아 나중에는 도쿠가와 막부에서 '일국일성령'을 발포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원래 전국 무장이 군웅할거 하는 시대에 영내에는 지성이라고 하는 성들이 그물코와 같이 둘러쳐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전국 다이묘는 부하인 쿠니진과 토호에 의해 그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쿠니진과 토호는 평상시에는 농업에 종사해, 만일의 경우에 갑옷을 입고 창을 가진 채로 지성에 들어가,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들을 말합니다. 물론, 이 지성들은 성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망루가 있고 높은 성벽이 있는 훌륭한 성이 아니고, 저택 보다 좀더 나은 작은 구규모인 것이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이 지성에서 다른 지성으로 소식을 전달하는 것이 나각과 큰북이었습니다.(통신은 어떻게 했었을까?) 마치 우리나라의 봉화와 같은 것인데, 이를 위해 지성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성이 만약 적의 측에 붙어버리면 엄청 큰일이지요. 그 근처가 적의 영지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국 다이묘들에게는 이 지성들은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이를 타파한 것이 바로 노부나가입니다. 노부나가는 정복한 땅에 본성을 제외한 지성들을 철거해 벌렸습니다. 대신 놀라운 축조술로 본성을 강하게 개축했지요. 즉, 시로와리가 철거라는 느낌보다는 지성의 역할들을 본성에 흡수시키는 듯 진행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고쿠진과 토호들은 더 이상 성 밖에 있는 메리트가 없어 본성에 상주하게 됩니다. 즉, 병사와 농부가 분리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노부나가는 병농분리를 이뤄 강대한 병사를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평정한 곳에 측량과 무기 몰수를 실시해 점차 중앙집권을 강화시킨 것이 바로 히데요시입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노부나가는 전투에만 강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