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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 신겐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가와 호조가의 대결; 미마세 고개의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가와 호조가의 대결; 미마세 고개의 전투 에이로쿠 12년(1569년) 귀국 중의 다케다 신겐의 군을 호조 군이 미마세고개에서 기습한 '미마세고개의 전투(三増峠の戦い)'가 있었습니다. 키요스 동맹을 깨고 이마가와가로 쳐들어간 신겐은 스루가를 얻게 됩니다.(이마가와관 공방전) 당연히 이 신겐의 행동을 본 사가미의 호조가는 경계의 태도를 드러내고 군사를 움직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충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음해 에이로쿠 12년(1569년), 신겐은 이제 사가미에 원정을 개시합니다. 신겐은 가이에서 출진해, 시나노로 우회해, 우에노를 거치고, 무사시로 이동해 거기서 사가미로 들어갑니다. 게다가 후호조의 지성인 하치가타성(鉢形城), 타키야마성(滝山城)을 견제하며 남쪽으로 이동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에이로쿠 11년(1568년) 요전날의 슨푸 이마가와관의 공방전에서 다케다 신겐에 쫓겨 도토미에 도망친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공격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카케가와성을 포위했습니다. 에이로쿠 11년 말, 신겐이 가이에서 스루가로 진공(삿타토우케 전투)하는 것과 동시에, 이에야스는 미카와에서 도토미로 진공을 개시했습니다. 다음해에, 도쿠가와군에 의한 카케가와성 공방전이 개시합니다. 성주인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는 이마가와의 중신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에서의 굴지의 지장입니다. 도쿠가와측의 공격은 신통찮고 3월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이에야스 자신이 총대장이 되어 카케가와성 공방전에 참가합니다. 그때까지 도쿠가와의 공격을 잘 막고 있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마가와 멸망하다(1) 이마가와관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마가와 멸망하다(1) 이마가와관 공방전 에이로쿠 11년(1568년) 스루가에 침입한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 이마가와 우지자네의 저택 이마가와관을 공격했습니다. 삿타토우케 전투(삿타토우케 전투)에서 간단히 승리를 거머쥔 신겐은 그 기세를 몰아 이마가와관으로 쳐들어 갑니다. 이마가와관은 후에 슨푸성(駿府城)이 되는 곳이지만, 이때는 '성'이 아니라 '관'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탄한 장소에 건설된 건물이어서 농성이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우지야쓰도 이 이마가와관에서 방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사가미의 호조 우지마사(北条氏政)에게 원군의 요청을 하며 관의 배후에 있는 시즈하타야마성(賤機山城)에 농성 하며 호조의 원군을 기다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작전을 읽고 있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삿타토우케 전투, 신겐 스루가에 진공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삿타토우케 전투, 신겐 스루가에 진공하다 에이로쿠 11년(1568년) 스루가에 진공하려고 하는 다케다 신겐과 그것을 맞아 싸우는 스루가의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氏真)가 격돌한 '삿타토우케 전투(薩埵峠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 전투(오케하자마 전투)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목숨을 잃은 후, 뒤를 이은 것이 장남 우지자네(氏真)입니다. 그러나 동해도 제일궁 요시모토의 후계자 자리는 그에게는 너무 과중했던것 같습니다. 가신단의 마음은 주군에게서 떠나 이마가와가는 순식간에 쇠퇴해갔습니다. 우지자네의 어머니가 다케다 신겐의 여동생(죠우케이인)이였기 때문에 당분간은 손을 대지 않았던 신겐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키요스 동맹을 파기해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손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적남 요시노부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 신겐의 적남 요시노부의 할복 에이로쿠10년(1567) 아버지 다케다 신겐에 의해서 유폐 되고 있던 적남 요시노부가 할복 했습니다. 텐분7년(1538년)에, 가이의 다케다 신겐의 장남으로 정실 산죠노가타와의 사이에 태어난 타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는 아버지의 애정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노부토라를 쫓아낸 일의 반작용인지, 자신의 아들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을 쏟은 것 같습니다. 텐분 21년(1552년) 요시노부가 15세 때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딸과 결혼했을 때에는 거국적으로 축하했고 다음 해 아시카가 요시테루에게 이름의 한 글자를 받아 요시노부라 자칭했을 때에도 매우 기뻐해 집까지 신축해 버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다음 해에는 앞의 이마가와에 사가미..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재패의 원동력, 인재활용법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재패의 원동력, 인재활용법 다케다 신겐이 지배하는 가이의 동쪽은 호조의 사가미, 남쪽은 이마가와의 스루가라고 하는 대국들이 있고 서쪽은 거대한 아카이시 산맥이 방해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쪽의 시나노를 다케다의 영지로 하는 것은 아버지 노부토라의 시대부터 오랜 세월의 꿈이었습니다. 당시의 시나노는 슈고 오가사와라 나가토키(小笠原長時)로 후츄(府中)에서 통치하고 있었지만, 그 범위는 분지주변의 치기미, 아즈미와 이나만으로, 그 이외는 현지에 뿌리내린 코쿠진들의 군웅할거인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추방한 신겐은 스와를 점령하고 북시나노를 좌지우지하는 무라카미 요시키요와 힘을 겨루던 신겐은 결국 텐분 22년(1553년)에 요시키요의 본성을 점령해 시나노 전 국토를 거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신겐의 미노와성 공략, 나가노가 멸망과 신가게류 탄생 일본 전국시대; 신겐의 미노와성 공략, 나가노가 멸망과 신가게류 탄생 에이로쿠9년(1566년) 다케다 신겐의 공격을 받고 있던 미노와성(箕輪城)이 점령당해 성주 나가노 나리모리(長野業盛)가 할복해 나가노가가 멸망 했습니다.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과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반복하던 에이로쿠 초 신겐은 동시에 이 우에노에도 끊임없이 진공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 우에노 서부에 위치하는 미노와성의 성주는 관동 굴지의 지장 나가노 나리마사(長野業正)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신 중에는 무예로 명예 높은 카미이즈미 노부쯔나(上泉信綱)나 히키다 카케카네(疋田景兼)가 있어 아무리 신겐이라도 쉽게 정복하지 못하고 공격을 반복하다 지치고 있었습니다. 에이로쿠4년(1561년) 성주 나리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 5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 에이로쿠7년(1564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의 사이에 제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시오자키 대진(塩崎の対陣)이 발발했습니다.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하치만바라 전투) 이전에 관동관령이 된 겐신은 호조가와도 적대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에이로쿠7년(1564년) 신겐은 무츠 남부의 모리우지(芦名盛)에게 겐신의 배후를 찌르기를 요청하고 그 사이에 시나노와 에치고의 국경 부근에 있는 우에스기측의 성채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겐신은 관동의 호조와의 전투를 중단하고 에치고로 돌아갑니다. 번번이 자신의 천도를 막는 신겐에 분노한 겐신은 '다케다 하루노부 악행지사' 라는 원문(願文)을 각지의 절에 봉납하고, 신겐 토벌의 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신겐과 겐신의 격돌!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신겐과 겐신의 격돌! 제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엔로쿠4년(1561년)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대격돌, 전국시대 최고 전투 중 하나인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하치만바라의 전투(八幡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북시나노의 사이(犀)강과 치쿠마(千曲)강의 합류하는 장소인 '가와나카지마' 신겐과 겐신은 이 가와나카지마에서 총 5 회의 전투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본진으로 쳐 들어온 신겐에, 말을 탄 겐신이 손에 가진 군검으로 베고, 이를 부채로 막는 신겐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전투가 이 4번째 전투입니다. 그냥 가와나카지마 전투라고 하면 이 전투를 말하는 것입니다. 겐신의 부대는 1만 3천의 군세를 이끌고 사이죠산(妻女山)에 진을 치고, 신겐은 2만의 군세를 카이츠성(海津..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우에노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우에노하라 전투 코우지 3년(1557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이 다시 한번 격돌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우에노하라 전투(上野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제 2차 가와나카지마의 전투는 강화(사이카와 전투)로 끝났었지요. 이 이후 겐신은 뜬금포를 발사하고 출가를 결의하는 반면 신겐은 강화를 찢어, 시나노 북부에의 진공을 재개합니다. 게다가 겐신의 가신인 오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와 내통해 엣츄(越中)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오오쿠마 엣츄의 난은 신속하게 진압되고 실패에 끝납니다. 이어서 신겐은 앞의 강화의 조건으로 영지가 안도되고 있던 우에스기측의 고쿠진들에게도 반란을 종용해 겐신의 세력에 혼란을 증가시킵니다. 가족의 배반과 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