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신겐의 미노와성 공략, 나가노가 멸망과 신가게류 탄생
에이로쿠9년(1566년) 다케다 신겐의 공격을 받고 있던 미노와성(箕輪城)이 점령당해 성주 나가노 나리모리(長野業盛)가 할복해 나가노가가 멸망 했습니다.
당시 상황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과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반복하던 에이로쿠 초 신겐은 동시에 이 우에노에도 끊임없이 진공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 우에노 서부에 위치하는 미노와성의 성주는 관동 굴지의 지장 나가노 나리마사(長野業正)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신 중에는 무예로 명예 높은 카미이즈미 노부쯔나(上泉信綱)나 히키다 카케카네(疋田景兼)가 있어 아무리 신겐이라도 쉽게 정복하지 못하고 공격을 반복하다 지치고 있었습니다.
견고했던 미노와성의 모습입니다
에이로쿠4년(1561년) 성주 나리마사가 병사해 버립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장남 나가노 나가모리입니다. 불과 14세에 아버지를 이었지만 그도 아버지를 닮고아 상당히 지략과 무용이 뛰어난 무장이었습니다. 신겐이 공격했을 때도 노부쯔나등 가신의 보좌를 받으면서 훌륭히 격퇴하고 있었습니다. 미노와성은 복잡한 지형인 천연의 요충지 위에 구축되어 철저히 손질되고 있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신겐의 공격은 서서히 나가노가의 세력범위를 좁혀가고 신겐의 포위는 천천히 강화되어 갑니다. 미노와성은 점차 고립됩니다. 이윽고 에이로쿠9 년(1566년) 신겐이 2만의 대군을 이끌고 이 미노와성의 포위를 굳혔을 무렵 성안에 남는 군사는 불과 2백정도 였습니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신겐이 총공격을 실시하자, 나가노군은 분전을 거듭했지만 100배의 차이가 나는 군사 앞에 3일만에 괴멸상태에 이릅니다.
분전한 나가모리였지만 역부족이었지요
나가모리는 여기서 마지막 전투에 도전합니다. 스스로가 선두에 서 성문밖으로 나와 죽음을 각오하고 적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분전했습니다. 수가 적어 큰 피해는 주지 못했지만, 예상 이상의 혼란과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에 만족한 나가모리는 성으로 돌아와 할복합니다. 향년 19세 젊은 지장은 신겐이라는 큰 벽에 부닥쳐 멸망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군의 할복을 만류한 무예가 뛰어난 두 명의 충신 카미이즈미 노부쯔나와 히키다 카케카네는 주군의 유지를 이어 성밖에 나와 공격하려 합니다만, 다케다측에 설득되어 곧 성문을 열어 항복합니다. 신겐은 그들을 자신의 무장으로 만드려 하지만 이들은 그 권유를 끊고 떠납니다.
이 검술은 지금도 전해집니다
무사 수행으로 전국을 여행하며 넨류(念流), 가게류(陰流), 신도류(神道流) 등의 검술을 익힌 이들은 신가게류(新陰流)를 만듭니다. 이들의 제자중 하나의 아들이 바로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입니다. 야규의 신가게류는 도쿠가와 막부에서 크게 융성합니다. 한편, 다른 제자는 히키다 신가게류를 만들어 오다가나 도요토미가의 무예지도역이 되었습니다. 한 성의 점령이 검술 유파를 만들어낸 역사의 나비효과를 보고 있으면 역시 이런맛에 역사가 재밌어 지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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