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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역사편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2차 갓산토다성 공방전(2) 아마고가의 멸망과 재흥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2차 갓산토다성 공방전(2) 아마고가의 멸망과 재흥



 에이로쿠9년(1566년) 아마고가가 갓산토다성을 모리군에 포위되어 결국 항복을 표명했습니다.


 아마코 하루히사는 산인(山陰) 8개국을 지배하는 대영주였지만, 하루히사 만년에 동족의 대립에 의해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이쓰쿠시마 전투의 서막) 모리가에서 이 분란을 획책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혼란에 빠진 아마고를 가만이 놔둘 모리가 아닙니다. 아키의 모리 모토나리는 아마고가의 영지에 진공하기 시작합니다. 하루히사는 필사적으로 응전하지만 이미 기세를 탄 모토나리, 게다가 모리는 대립하고 있던 큐슈의 오오토모와도 화해해 총 전력을 대 아마고가에 쏟아 붓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루히사가 급사하고 뒤를 이은 아들 요시히사가 모리의 압박에 굴해 에이로쿠9년(1566년) 아마고가는 멸망합니다.



초승달 일화로 유명한 사가노스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야마나카 시카노스케(山中鹿之介)가 등장합니다. 사카노스케는 아마고가가 멸망 하기 전부터 아마고가에 몸담고 있던 옛 신하입니다. 나라가 멸망한 이때, 그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합니다. 시카노스케와 아마고가의 옛 신하들은 아마고 카츠히사(勝久)를 옹립 해, 오키의 호족 오키 타메키요(隠岐為清)의 협력 아래 이즈모를 탈환합니다. 하지만 또 다시 모리에 공격받아 주군 카츠히사와 함께 교토로 탈출합니다. 그리고 당시 교토에 있던 오다 노부나가를 만납니다. 노부나가는 당시 사방이 적뿐인 상태로, 모리도 신경이 쓰이지만 우선 이시야마 혼간지와의 싸움에 전력을 다하고 싶었기에, 대 모리의 군세가 증가하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었습니다. 카츠히사와 사가노스케는 츄고쿠 공격으로 아마고가가 모리를 견제하는 것을 조건으로 노부나가의 원조를 얻는데 성공합니다. 


 그 후 오다의 도움을 빌리면서, 이나바에 진공한 그들은 오니가성(鬼ヶ城), 나 미야코노성(私都城)을 공략해 간신히 아마고가를 다시금 부흥하게합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때에 중신들이 모리측으로 배신하고 노부나가도 원조를 중지해 버리지요. 단신으로 모리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아마고군은 성을 버리고 탄바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노부나가를 이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의 츄고쿠 공격에 참가해 하리마의 코우즈키성(上月城)을 손에 넣어 아마고가 부흥의 기회를 얻지만, 결국 모리군에 포위되고 카츠히사는 할복하고 사카노스케는 모리에 투항합니다.



아마고가의 멸망...



 사가노스케가 항복한 것은 아마 아마고가를 부흥시키려 했기 때문이겠지요 이를 눈치챈 모리가는 모리 데루모토에게로 호송되는 도중에 살해합니다. 아마고 가쓰히사와 사카노스케의 죽음으로 아마고가는 완전하게 멸망 해 버렸습니다. 거진 멸망한 아마고가를 끊임없이 되살리려 했던 것이, 아마고 십용사 그리고 그 리더가 바로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였습니다. 사카노스케가 초승달에 '달이여, 나에게 간난신고를 주시오!'이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지요. 전국의 무장들이 하나 둘 스러지는 때, 아마고가도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