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나바야마성 공방전(1) 노부나가의 미노 공격
에이로쿠10년(1567년) 미노의 사이토 요시오키(斉藤義興)의 가신 미노 삼인중이 오다 노부나가측에 붙어 이나바야마의 밑의 이노쿠치성(井ノ口城)에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미노의 살무사' 사이토 도산은 그 파란만장한 인생을 자신의 아들 요시오키와의 전투로 끝냅니다.(니가라가와 전투) 하지만 그는 죽기 전에 쓴 유언장에서 자신의 사위인 노부나가에게 미노를 양도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출진은 했지만 장인을 도울 수 없었던 노부나가는 그 '양도장'을 대의명분으로 '장인어른을 애도하는 전투'라며 가끔 미노로 진공합니다만 전선은 교착되어 있었습니다.
노부나가를 처음 본 도산은 '미노는 사위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자신의 아들 보다 노부나가가 기량이 크고 미노를 빼앗길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산이 죽기전에 아들의 기량을 인정했다는 것처럼 요시오키는 상당한 명군이었습니다. 그는 내정에도 뛰어나 가신의 통솔도 훌륭히 해서 이 요시오키가 미노를 지배하고 있던 동안 노부나가는 당해 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노부나가는 아직 오와리조차 통일을 하지 못한 상태였지요.
오늘의 배경, 이나바야마성
에이로쿠2년(1559년) 오와리를 통일하고 그 다음 해에는 오케하자마에서 요시모토를 죽인뒤 자유를 되찾은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어, 드디어 미노 공격에 전력을 쏟으려고 한 에이로쿠4년(1561년), 요시오키는 34세 밖에 되지 않았지만 급사해 버립니다. 그의 뒤를 타츠오키(龍興)가 불과 14세에 아버지를 잇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어린 군주 아래서 미노의 가신단안에 균열이 생겨 버립니다. 노부나가는 계속 미노 공격을 결행하면서 에이로쿠6 년(1563년)에는 미노 공략의 거점으로 코마키야마성(小牧山)를 구축해 주력 부대를 그 쪽으로 옮기고 집요하게 공격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천하의 이나바야마성은 쉽사리 점령되지 않습니다. 그런 이나바야마성을 손쉽게 점령했던 것이 저번에 포스팅했던 다케나카 한베에 시게하루(竹中半兵衛重治)였었지요. 이 이야기 자체가 사이토가의 군열을 나타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나바야마성 공방전 개요도
아무튼 노부나가의 공격은 계속 됩니다. 에이로쿠9년(1566년) 키노시타 토우키치로우 (木下藤吉郎; 후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스노마타(墨俣)에서 하룻밤에 성을 건설해 단번에 이나바야마성이 위험해졌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진위여부를 모르기 때문에 일단 무시하겠습니다. 에이로쿠10년(1567년) 중대사건이 일어납니다. 미노삼인중이 배반해 노부나가군에 합류 했습니다. 미노 삼인중은 소네성(曾根城) 성주 이나바 잇테쓰(稲葉一鉄), 오카이성(大垣城) 성주 우지이에 보쿠젠(氏家卜全) 그리고 키타가타성(北方城) 성주 안도 모리나리(安藤守就)의 세 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이토 이전의 토키가 때부터 미노의 가신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배신을 하게된 것이지요. 이 일로, 사이토가의 가신들은 동요해 결국 이나바성이 점령되게 됩니다.(이나바야마 공방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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