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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바 히데요시

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와 이야에스가 맞붙다 고마키나가쿠테 전투(2) 모리 나가요시의 참패, 하구로 전투 일본 전국시대;히데요시와 이야에스가 맞붙다고마키나가쿠테 전투(2) 모리 나가요시의 참패, 하구로 전투 덴쇼 12년(1584년) 오다 노부오,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합군과 하시바 히데요시가 싸운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중 하구로 전투가 발발했습니다. 덴쇼(연호) 12년 3월 13일, 하시바 히데요시가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를 시켜 오와리 이누야마성(犬山城)을 공략시켜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小牧 長久手の戦い)'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거성 키요스성의 바로 앞까지 적이 보이자 오다 노부오는 조속히 동맹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군의를 엽니다. 이에야스는 예전에 노부나가가 한시기 거성으로 하고 있던 코마키산성에 진을 치고 결전의 장소 하구로로 향합니다. 전국시대 최고의 영웅 중 두명의 전투가 서서히 막을 올리..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와 이야에스가 맞붙다 고마키나가쿠테 전투(1) 이누야마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히데요시와 이야에스가 맞붙다고마키나가쿠테 전투(1) 이누야마성 공방전 덴쇼 12년(1584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를 시켜 오와리 이누야마성(犬山城)을 공략시켜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小牧長久手の戦い)'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덴쇼12년(158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와리에 들어와 키요스성에서 오다 노부오와 회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는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뒤의 하시바 히데요시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노부나가의 삼남 오다 노부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연합해 일어난 전투입니다. 이 해 4월에 일어나는 나가쿠테 전투, 그 2개월 후의 6월에서 7월에 걸친 카니에성(蟹江城) 공방전과 3월에 일어난 '코마키 전투'를 합쳐 '코마키나가쿠테..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6) 가쓰이에와 오이치노가타의 죽음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6) 가쓰이에와 오이치노가타의 죽음 덴쇼 11년(1583년)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한 시바타 가쓰이에가 들어간 키타노쇼성을, 마에다 토시이에를 선봉으로 하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포위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사후 삼남의 간베 노부타카를 지지한 오다가 중신 시바타 가쓰이에와 장손 산포시를 지지한 하시바토 히데요시에 의한 사실상의 노부나가의 후계자 분쟁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한 가쓰이에는 본거지인 에츠젠 기타노쇼로 퇴각했습니다. 전원 합쳐도 약 3,000 정도 뿐이었던 가쓰이에는 키타노쇼성의 객실에 가신을 모아 '내가 전장에서 돌아온 것은 죽는 것이 무섭기에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전황에 휩쓸렸을 뿐이다. 내가 겁장이라 불리는 것은 괜찮지만 너희까지 매도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하시바 군을 물리치다 사누키 평정 일본 전국시대;쵸쇼카베 모토치카, 하시바 군을 물리치다사누키 평정 덴쇼 11년(1583년)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사누키 히키다효(引田表)에서 하시바 히데요시 측의 센고쿠 히데히사(仙石秀久)를 물리쳤습니다. 덴쇼(연호) 11년(1583년) 4월 21일은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사이에 행해진 시즈가타케 전투(시즈가타케 전투)가 있었지요. 이 때 그날, 시고쿠의 히키다효에서는 다른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덴쇼 3년(1575년) 7월의 시만토가와 전투에 승리해, 토사를 통일한 쵸쇼카베 모토치카는 나머지 시고쿠의 영주들이 모리와 동맹을 맺고 있었기에,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으려 합니다. 노부나가의 측근 중 한명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가신 사이토 토시미쯔(斉藤利三)의 여동생과 모토치카가 결혼을 하기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3) 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3)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덴쇼 11년(1583년),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사이에 발발한 오다가내 분쟁 시즈가타케 전투가 있었습니다. 혼노지에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 사후(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의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린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장손 산포시를 추천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노부나가의 장례까지 본인이 맡습니다. 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코베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노카타(お市の方)를 아내로 맞이해 히데요시에 대항합니다. 그리고 겨울을 맞이해 에츠젠에서 움직일 수 없음을 간파한 히데요시가 반대세력을 짖누르는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2) 사쿠마 모리마사, 하시바군을 기습하다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2) 사쿠마 모리마사, 하시바군을 기습하다 덴쇼 11년(1583년), 비와호의 북동쪽 기슭에서, 1개월에 걸쳐 대치하고 있던 시바타 가쓰이에군과 하시바 히데요시군사이에, 히데요시의 부재중을 확인한 가쓰이에가 사쿠마 모리마사를 시켜 히데요시의 성채를 급습하여 시즈가타케 전투가 발발했습니다. 혼노지에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 사후(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의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린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장손 산포시를 추천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노부나가의 장례까지 본인이 맡습니다. 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코베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노카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덴쇼 11년(1583년) 봄 시바타 가쓰이에의 키타노쇼 출진을 들은 하시바 히데요시가 결전을 대비해 오미 사와야마성(佐和山城)에 들어가 시즈가타케 전투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 천하를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혼노지의 변)에서 죽은 뒤에,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해 주군이 원수를 갚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 뒤에 열린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를 유리하게 진행시켜 후계자를 본인이 추천하는 노부나가의 손자 산포시로 결정하고 후견인이 됩니다. 물론 이에 오다의 가로 시바타 가쓰이에, 칸베 노부타카 그리고 다키가와 가즈마스는 큰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일본 전국시대;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7일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에서 장손 산포시(三法師)가 상속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것이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주군의 죽음을 복수하려 하시바 히데요시가 미쓰히데를 야마자키의 전투(야마자키 전투)에서 무찌른 것이 6월 13일의 일이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생전에 뒤를 잇게한 장남 노부타다가 노부나가와 함께 죽어버렸기 때문에 오다군은 시급히 주군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키요스 회의가 열립니다. 이 회의를 소집한 것은 오다가의 필두 가로인 시바타 가쓰이에였습니다. 그리고 회의에 출석한 인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2) 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일본 전국시대;야마자키 전투(2)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덴쇼 10년(1582년) 천하의 판세를 두고 덴노산에서 야마자키 전투가 발발합니다. 혼노지의 변에서 어느덧 11일째, 아케치 미쓰히데를 보통 '삼일 천하'라고 말하지만 이런 표현이 으례 그렇듯이 딱 삼 일만 천하를 거머쥐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눈물을 흘리며 주군의 복수를 부르짖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밑으로 오다의 세력들이 쏙 쏙 흡수됩니다. 한편의 미츠히데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키운 츠츠이 준케이도 오지 않고('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의지하고 있던 딸 가라샤의 남편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도 참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12일에 호라가토게에서 출진한 미쓰히데는, 직속 부하 1만 6천의 군사를 이끌고 히데요시군 4만과 맞서 싸우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4) 범인은 누구인가? 히데요시 흑막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4)범인은 누구인가? 히데요시 흑막설 혼노지의 변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노부나가가 반죽해논 것을 떡으로 만든 히데요시입니다. 게다가 츄고쿠로의 원군을 요청한 것도 다름아닌 히데요시이지요.(타카마츠성 공방전) 만약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 요청하지 않았으면 노부나가는 그대로 아즈치성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혼노지의 변은 일어날 수 없었겠지요. 이 히데요시의 원군 요청에 대해서는, '빗츄 타카마츠성에의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모리의 대군이 지원하러 온다는 정보가 있어, 그렇게 되면 형세가 역전할 가능성도 있기에'보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아무튼 히데요시로부터의 그 편지가, 아즈찌에 닿은 것이 5월 15일 입니다. 그리고, 타카마츠성을 구하기 위해, 깃카와 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