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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2차 조슈 정벌(1) 도쿠가와 이에모치, 조슈 정벌을 결의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2차 조슈 정벌(1) 도쿠가와 이에모치, 조슈 정벌을 결의 게이오 원년(1865년) 윤 5월 22일, 조슈 정벌의 취지를 천황에 주상 하기 위해, 제14대 에도 막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가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이른바 제2차 조슈 정벌을 하려는 것입니다만, 이 때, 제 121대 코우메이덴노에게서 내려진 칙명은 '당분간 오사카성에서 기다리고, 조슈 정벌은 유예하라'는 것으로, 결국 막부는 덴노의 허락이 나올 때 까지의 약 1년간, 수만이라는 대군과 함께 오사카에서 금족 되어 버립니다. 페리의 외국 함선 입항에 시작된 에도막부 말기의 동란은 불평등한 조약에 개국을 단행한 막부와 거기에 반대하는 양이파의 대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양이파는 역시 외국을싫어했던 당대의 코우메이덴노..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호조 다카토키 할복, 가마쿠라막부 멸망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호조 다카토키 할복, 가마쿠라막부 멸망 겐코 3년(1333년) 5월 22일, 닛타군의 공격에 의해 카마쿠라가 불타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등이 할복해 호조 가문이 멸망했습니다. 고다이고덴노가 아쿠도우(悪党)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의 조력을 얻어 가사기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겐코의 변을 발발시키는 것도 실패에 끝나(겐코의 변), 겐코 원년(1331년) 아카사카성(赤坂城)에서 분전 하고 있던 마사시게가 성을 탈출하고, 고다이고덴노가 오키로 도망친 것이 겐코2년(1332년)의 일입니다. 8개월 후 겐코의 변 때 가사기산에서 탈출하고 있던 고다이고덴노의 황태자 모리요시 친왕(護良親王)이 재기를 도모하고 요시노산에 들어가, 전국을 향해 막부 토벌의 영지를 발하자, 행방을 감추고 있던 .. 더보기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쇼군 취임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쇼군 취임 겐큐 3년(1192년) 7월 12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정이 대장군(쇼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일본 무가를 통솔하는 것은 '쇼군'입니다. 이 쇼군은 '정이대장군'이라는 뜻으로, '정이'란 홋카이도를 정벌한다 라는 뜻입니다. 즉, 정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시에 새로 생기는 직책이었습니다. 이 쇼군이 거주하는 곳이 '막부(幕府)'였습니다. 이 말은 중국 고전에서 '장군의 막영을 막부라고 한다'는 기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갠큐 3년(1192년) 7월 12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쇼군에 취임한 것으로 이 날을 보통 '가마쿠라 막부'가 생겨난 날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생긴 날을 이(1) 이(1) 쿠(9) 니(2)라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기타기리 가쓰모토, 중재에 실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기타기리 가쓰모토, 중재에 실패하다 7월 21일,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건립한 교토 호코지 종명에 트집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호코지 종명사건) 이에 도요토미 측은 분노하지만, 아직 전투의 준비가 되지 않습니다. 많이 남아있는 히데요시의 유산으로 료닌들을 고용해 무기의 준비도 시작하고는 있었습니다만, 조금만 더 시간을 벌고 싶었지요. 이에 도쿠가와 가문의 파이프역이기도 한 이바라키성(茨木城) 성주 가타기리 가쓰모토(片桐且元)가 변명을 위해 슨푸로 향했습니다. 가타기리 가쓰모토는 시즈가타케의 전투에서 그 이름을 달린 '시즈가타케 칠본창'(시즈가타케 전투)의 한 명입니다. 히데요시의 사후는 히데요리의 모리야꾸(傅役:스승역)를 맡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히데요리 산하였기에 서군에 섰습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색의 심리를 이용한 다케다 신겐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색의 심리를 이용한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이 인솔하는 군대 중에는 갑옷, 무기, 마구를 붉은색으로 칠한 부대(赤備え)가 있었습니다. '붉은 색'으로 염색해 적, 아군의 판별이 쉽게 되는데다가, 적에게의 위협의 목적이 있던 것입니다. '붉은 색'은 진출과 팽창을 나타내는 색입니다. 적이 보면, 다케다 신겐의 부대의 붉은 물결은 상당히 무서웠을 것입니다. 당시 붉은 색을 내기 위해, 진샤(辰砂)라 불리는 희소인 광물을 사용하고 있어 정예 부대에 한정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교육에 힘쓴 어머니 타치하라 나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교육에 힘쓴 어머니 타치하라 나미 타치하라 나미(立原なみ)는 타치하라 쓰나시게(立原綱重)의 딸이며 야마나카 미츠유키(山中満幸)의 정실로, 가히 아마고 10용사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야마나카 시카노스케 유키모리(山中鹿介幸盛)의 어머니입니다. 한국 어머니들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극성인 어머니들도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일본 전국시대에 한국 어머니에 결코 지지 않을만큼 교육에 열성인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나미입니다. 그녀는 자식을 기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해 사카노스케의 양육에 모든 힘을 기울여 자신이 맛없는 것을 먹고, 좋지 않을 것을 입을지라도 아들인 사카노스케에는 좋은 것들을 주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엄격할 때는 엄격했습니다. 자식들이 학문을 익히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덴노의 칙령이 내리다 덴노와 노부나가 관계는? 일본 전국시대;덴노의 칙령이 내리다덴노와 노부나가 관계는? 덴쇼 6년(1578년) 말 모리 데루모토와 혼간지 켄뇨에게 오다 노부나가와 강화 하도록 오오기마치 덴노의 칙명이 내려졌습니다. 이 강화의 칙명(講和の勅命)이라고 하는 것은, 겐키 원년(1570년)부터 덴쇼 8년(1580년)까지, 약 10년에 걸쳐서 전개된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의 이시야마 전투에 대한 강화의 칙명입니다. 아자이, 아사쿠라등 반 노부나가 동맹을 하나하나 때려잡던 노부나가였지만, 텐노지 전투이후에 참여한 모리의 수군과 노부나가에 배신한 아리오카성의 아라키 무라시게, 그리고 켄뇨의 말로 일어나는 혼간지 문도들로 인해 아직 평정을 찾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노부나가라 해도 많은 적들과 계속한 연전은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요...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 코우즈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코우즈키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하시바 히데요시가, 아카마쯔 마사노리(赤松政範)의 하리마(播磨) 코우즈키성(上月城)에 쳐들어갔습니다. 요시아키의 편지로 인해 노부나가 포위망이 생기고, 노부나가가 그것을 하나하나 파괴해 나가고 있는 도중, 노부나가는 본거지로 하고 있던 기후성과 미노, 오와리를 장남 노부타다에게 맡긴 뒤 덴쇼 4년(1576년) 초부터 아즈치성(安土城)의 축성에 착수합니다. 이즈음 노부나가는 6년전의 겐키 원년(1570년)에서부터 계속된 혼간지와의 이시야마 전투(1차 이시야마전투의 발발), 텐노지 전투(텐노지 전투)에 이어, 제1차 키즈가와구 해전(키즈가와구 해전)에다가 우에스기 겐신까지 혼간지와 갈등을 끊고, 참전을 표명해 나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