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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고쿠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묘큐에 가린 모토나리의 부인, 노미노 오오카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묘큐에 가린 모토나리의 부인, 노미노 오오카타 노미노 오오카타(乃美大方)는 츄고쿠의 패자 모리 모토나리의 후실 또는 측실입니다. 킷카와 일족인 노미 타카오키(乃美隆興)의 딸입니다. 모리 모토나리의 처인 묘큐(츄고쿠의 국모, 묘쿄)에 대해서는 다룬 적이 있는데, 여기서 모토나리는 측실을 들이지 않았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노미노 오오카타는 뭐냐? 하실 분들이 있겠는데요, 묘큐의 포스팅에도 썼지만 묘큐는 일찍 죽은 편입니다. 그렇기에 후에 후실로 노미노 오오카타를 들인 것이지요. 호이다 모토쿄(穂井田 元清), 아마노 모토마사(天野元政), 모리 히데카네(毛利秀包)를 모리와의 사이에서 낳았습니다. 그녀는 게이쵸 6년(1601)에 세상을 떠납니다. 모토나리가 1571년에 세상을 떠났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아마고가의 멸망, 2차 코우즈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아마고가의 멸망, 2차 코우즈키성 공방전 덴쇼 6년(1578년) 모리군에 포위된 코우즈키성에서 농성 하고 있던 아마코 가쓰히사(尼子勝久)가 할복 해, 산인에 기반을 두었던 아마고가가 멸망 했습니다. 남북조 시대에 활약한 사사키 도우요(佐々木道誉)를 선조로 이즈모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아마고가는 에이로쿠9년(1556년)에 아키의 모리 모토나리에 공격받아 멸망 해버립니다. 그러나, 야마나카 시카노스케(山中鹿之介)은 굴하지 않습니다. 그는, 16세에 첫 출진 할 때에 다음과 같이 초생달에 맹새했다고 유명한 아마고 십용사 중 한 명입니다. 願わくば我に七難八苦を与えたまえ원컨데 나에게 칠난팔고를 주기를 그는 마치 오뚜기와 같이 아마고가를 위해 일어납니다. 모리의 포로가 되었을 때도, 설사를 핑계로 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 포위망을 펼치다, 미키성 농성전 일본 전국시대;히데요시 포위망을 펼치다, 미키성 농성전 덴쇼 6년(1578년) 하시바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에 반기를 든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의 거성 미키성(三木城)을 포위했습니다. 덴쇼의 초 무렵에 오다 노부나가는 하시바 히데요시를 대장으로 하는 토벌군을 편성해 산요, 산인지방을 평정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차츰 하리마의 여러 영주들은 오다 측으로 붙게 되었지요. 덴쇼 3년(1575년)에는 벳쇼 나가하루 도 노부나가에게 직접 찾아가 오다 측으로 가담할 것을 신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덴쇼 6년(1578년) 초에 나가하루는 돌연 오다측에 일방적으로 지지철회를 선언해, 거성 미키성에서 농성합니다. 그 이유는, '노부나가의 잘난척을 견딜 수 없었다', '히데요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는 여러가지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 코우즈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코우즈키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하시바 히데요시가, 아카마쯔 마사노리(赤松政範)의 하리마(播磨) 코우즈키성(上月城)에 쳐들어갔습니다. 요시아키의 편지로 인해 노부나가 포위망이 생기고, 노부나가가 그것을 하나하나 파괴해 나가고 있는 도중, 노부나가는 본거지로 하고 있던 기후성과 미노, 오와리를 장남 노부타다에게 맡긴 뒤 덴쇼 4년(1576년) 초부터 아즈치성(安土城)의 축성에 착수합니다. 이즈음 노부나가는 6년전의 겐키 원년(1570년)에서부터 계속된 혼간지와의 이시야마 전투(1차 이시야마전투의 발발), 텐노지 전투(텐노지 전투)에 이어, 제1차 키즈가와구 해전(키즈가와구 해전)에다가 우에스기 겐신까지 혼간지와 갈등을 끊고, 참전을 표명해 나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이쓰쿠시마 전투(1) 이쓰쿠시마 전투의 서막 일본 전국시대;이쓰쿠시마 전투(1) 이쓰쿠시마 전투의 서막 코우지 원년(1555년) 스에 하루카타(陶晴賢)측의 카미료쥬(神領衆)들이 아키 오가타, 오오타케에서 작은 배 7~80척에 나눠 타고 모리 모토나리측의 이쓰쿠시마(厳島)를 공격했습니다. 전국시대 스오우의 오오우치가와 이즈모의 아마고가가 격전을 벌이고 있던 츄고쿠 지방에 모리 모토나리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오우치가의 중신인 스에 하루카타가 모반을 일으켜 실권을 잡습니다. 이 때 스에측에 서서 함께 오오우치가를 공격해 세력을 확대한 모토나리였지만 실은 고쿠진이었던 자신을 등용해준 요시타카에 약간이나마 은의를 느끼고 있어 마음 속에서는 이 모반을 기분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재빨리 오오우치가의 가신단을 장악 하고 모반을 결행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모리 모토나리의 도약, 킷카와, 코바카야 탈취 일본 전국시대;모리 모토나리의 도약, 킷카와, 코바카야 탈취 텐몬 19년(1550년) 모리 모토나리가 킷카와 부자를 살해했습니다. 관서의 대영웅 모리가도 모리 모토나리가 상속했을 무렵은 일개 고쿠진(반사 반농의 재야의 무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북쪽엔 아마고가, 서쪽엔 오오우치가, 남쪽에는 오오토모가의 사이에 낀 약소세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가가 엄청난 대국의 주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모토나리의 모략의 산물입니다. 모토나리는 뛰어난 장수라기 보다는 위대한 참모스타일 이었습니다. 치밀한 정보 활동에서 모략, 계략을 만들어 적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지요. 강대국에 둘러쌓인 약소국의 전략으로선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모토나리가 크게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된 것은 차남 모토하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