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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전쟁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전국시대의 평균신장은?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전국시대의 평균신장은? 보통 일본인들은 키가 작다고 생각하는데요, 전국시대는 영양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키가 더 작았습니다. 약 160cm가 남성의 평균 신장이었습니다. 그외에 유명 무장들의 신장에 대해서 알아 봅시다. 마에다 토시이에 182 cm 아자이 나가마사 180 cm남짓 혼다 다다카쓰 140 cm 이시다 미쓰나리 156 cm 오다 노부나가 162 cm 도요토미 히데요시 150 cm 우에스기 겐신 156~160 cm 도쿠가와 이에야스 159 cm(혹은156 cm) 다테 마사무네 159.4 cm 다케다 신겐 162 cm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전국시대가 뭔가 땅꼬마들의 전투같아서 재밌습니다만, 당시에는 표준이었습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 개전(開戦)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1) 개전(開戦) 전투의 개전 정치 문제가 해결하지 않거나 다른 영주가 중재에 들어가, 쌍방이 교섭의 장에 서는 것을 합의하지 않는 이상 영주끼리의 전쟁을 멈추는 것은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교섭을 반복해도 타협하지 못하고, 사태가 벽에 부딪혔을 때, 드디어 개전의 봉화가 오릅니다. 많은 전쟁은 쌍방이 타협을 거부해, 자기의 권익을 지키려고 했을 때에 발생하지요. 이 때, 양쪽 모두 상대에 대한 증오가 소용돌이치고 있어 전쟁을 회피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개전의 날자 정하기 전투의 날, 이유를 통지하는 것을 출진의 지령(陣触れ)이라고 합니다. 덴쇼 15년(1587년) 3월 1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 정벌에 출진했고, 덴쇼 18년(1590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고마키나가쿠테 전투(5) 모리 나가요시, 설욕에 실패하다 나가쿠데 전투 일본 전국시대;고마키나가쿠테 전투(5)모리 나가요시, 설욕에 실패하다 나가쿠데 전투 덴쇼 12년(1584년) 4월 9일 하시바 히데요시와 오다 노부오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싸운 '코마키 나가쿠데 전투' 중 나가쿠테의 전투가 발발 했습니다. 덴쇼 12년(1584년) 3월 13일, 히데요시 산하의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의 이누야마성 공략(이누야마성 공방전)으로 시작된 이 전투는 노부오와 연합한 도쿠가와와 기나이를 지배하는 히데요시의 전투는 이기는 쪽이 천하를 노리게 될 중요한 전투였습니다. 당시 무장들도 이 사실을 알기에 도쿠가와에 붙을 것인가 히데요시에 붙을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야스는 차녀 도쿠히메(督姫)를 신부로 주어 동맹을 맺고 있던 관동의 호조 우지나오로(北条氏直)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덴쇼 11년(1583년) 봄 시바타 가쓰이에의 키타노쇼 출진을 들은 하시바 히데요시가 결전을 대비해 오미 사와야마성(佐和山城)에 들어가 시즈가타케 전투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 천하를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혼노지의 변)에서 죽은 뒤에,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해 주군이 원수를 갚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 뒤에 열린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를 유리하게 진행시켜 후계자를 본인이 추천하는 노부나가의 손자 산포시로 결정하고 후견인이 됩니다. 물론 이에 오다의 가로 시바타 가쓰이에, 칸베 노부타카 그리고 다키가와 가즈마스는 큰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2) 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일본 전국시대;야마자키 전투(2)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덴쇼 10년(1582년) 천하의 판세를 두고 덴노산에서 야마자키 전투가 발발합니다. 혼노지의 변에서 어느덧 11일째, 아케치 미쓰히데를 보통 '삼일 천하'라고 말하지만 이런 표현이 으례 그렇듯이 딱 삼 일만 천하를 거머쥐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눈물을 흘리며 주군의 복수를 부르짖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밑으로 오다의 세력들이 쏙 쏙 흡수됩니다. 한편의 미츠히데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키운 츠츠이 준케이도 오지 않고('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의지하고 있던 딸 가라샤의 남편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도 참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12일에 호라가토게에서 출진한 미쓰히데는, 직속 부하 1만 6천의 군사를 이끌고 히데요시군 4만과 맞서 싸우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국시대에는 왜 항상 전란의 중심에 있었는가? 일본 전국시대;전국시대에는 왜 항상 전란의 중심에 있었는가? 전국시대는 '전'국이라는 말처럼 항상 전쟁과 함께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전쟁은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벌어지는데다, 전쟁 후에도 뒷 수습할 것들이 정말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거나, 사건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국시대의 전쟁의 가장 큰 이유는 토지의 부족입니다. 일본은 가마쿠시대부터 '고온(御恩)'과 '봉공(奉公)'에 의한 주종관계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가신(家来)이 주군을 위해 일을 하고, 주군은 그 보답으로 토지를 하사하는 유럽의 중세시대의 영주와 기사의 관계와 비슷한 쌍무적 계약관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어디까지나 토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요. 이 시대에는 이미 이 주종..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일본 전국시대란? 일본 전국시대;일본 전국시대란?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일본에는 '전국시대'가 있습니다. 사실 일본의 역사라는게 우리나라 사람이 접근하기에 쉽지는 않지요. 일본에 대한 여러가지 감정들도 있고 말입니다. 보통 일본의 전국시대는 Koei사의 '삼국지'시리즈를 하다가, 더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본의 전국시대를 다룬 '신장(노부나가)의 야망'을 플레이기 하게 되면서 빠져들게 되지요. 신장의 야망을 플레이하며 이 장수는 누구지? 해서 찾아보고, 그러다가 일본 전국시대를 다룬 소설, 을 읽고 전국시대에 빠져들게 되곤 합니다. 저도 이런 사람들 중 하나인데요. 재밌는 것은 정작 일본 친구들은 전국시대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카와 이야에스를 아는 정도가 일반적.. 더보기
일본전국시대; 일본 전국시대의 진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본전국시대;일본 전국시대의 진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전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어떤 진을 선택하느냐 입니다. 특히 병농분리가 되지 않았던 전국시대에는 진을 잘못 짰다가는 병사들이 모두 도망쳐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형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에는 헤이안시대에 당나라에서 오오에노 고레도키(大江維時)가 가져온 '8진'을 따라 진형을 취했습니다. 어린(魚鱗), 언월(偃月), 학익(鶴翼), 방원(方円), 봉시(鋒矢), 안행(雁行), 장사(長蛇), 형액(衡軛)의 여덟 종류의 진이 있었는데요, 각각의 진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린진은 그 이름과 처럼 물고기의 형태로 진을 치는 것입니다. 한 부대를 '비늘'로 보아, 맨끝의 일점에 병력을 집중하여, 적을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성에 대해(1) 전국시대 성의 역사 일본 전국시대; 성에 대해(1) 전국시대 성의 역사 일본 전국시대에 대해 보기전에 알고 넘어가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의 성의 구조입니다. 전국시대의 성은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남북조에 들어와 벌어진 요시노산 주변을 무대에 행해진 공방전에서 태어난 산성, 아카사카성(赤坂城)이나 치하야성(千早城)이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평지가 아니고 게릴라전에 유리한 산 위에 성채와 같은 성을 쌓아 천연의 지형을 이용해 위에서 돌이나 통나무를 떨어뜨려 공격해 오는 적을 막는 방식의 성 이지요. 하지만 무로마치 시대 전기에는 정권이 안정되어, 성이 전투용이라기보다는 수호나 다이묘의 저택이라고 하는 의미가 커져, 방어보다는 화려함과 편리함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여러 무사들은 시골에서 각자 저택을 쌓고 살게 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승 기원의 의식들 \\\\\\\\\\\\\\\\\\일본 전국시대; 전승 기원의 의식들 전쟁이라는 것에는 수없이 많은 운이 작용합니다. 옛날에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칠성단을 짓고 동남풍을 부르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때부터 현대 전쟁까지 전쟁의 시작 전에는 여러가지 금기가 있고 사기를 높이기 위한 의식들이 있지요. 전국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전승을 기원하는 다양한 의식들이 있었습니다. 보통 이러한 전승 기원의 의식을 관장하는 것은 참모들의 일이었습니다. 사실 참모라하면 군의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을 생각하기 쉬우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두번째로 중요한 업무이고, 제일 중요한 업무는 사실 이 전승기원의 의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별점이나 주역을 보고 점을 쳐 적이 어느 방위로 공격한다 라는 것 등을 주군에게 전달하는 것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