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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와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한번의 전투로 멸망, 이마가와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한번의 전투로 멸망, 이마가와 가문 전국시대에 일어나고 몰락한 수많은 가문 중에서 이마가와 가문 만큼이나 한 번의 대패로 몰락한 가문이 또 있을까요? 보통 이마가와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의 발판(...)으로 등장하나 사실 요시모토는 엄청나게 유능한 다이묘였고, 그의 아들인 우지자네는 평벙한 다이묘였습니다. 다만 상대가 노부나가였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이마가와 가문의 성립 스루가의 센고쿠 다이묘였던 이마가와 가문의 조상은 다름아닌 아시카가 가문입니다. 아시카가 가문이 분가해 이마가와의 마을들을 다스리면서 '이마가와'라 자칭하게 된 것입니다. 호조가문과 덴노의 권력 투쟁인 '나카센다이의 난'에서 아시카가 측에선 이마가와 가문은 스루가, 도토미의 수호직을 제수받게 됩니다. 이 뒤로 이마가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영주편; 멍청한 것인가 시대를 잘못만난 것인가, 이마가와 우지자네 일본 전국시대 영주편;멍청한 것인가 시대를 잘못만난 것인가, 이마가와 우지자네 덴쇼 3년(1575년),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氏真)가 상경해 교토 쇼코쿠지(相国寺)에서 부친의 원수, 오다 노부나가와 대면했습니다. 동해도 제일궁이라 불리며 천하를 노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당시 일개 시골 무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칼에 오케하자마(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은 것은 바로 이마가와 우지자네입니다. 보통 우지자네는 아버지만 못해 나라를 망친 리더로 묘사됩니다. 그러면 정말로 우지자네는 무능했을까요? 다케가의「고요군감」은 신겐을 빨아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서는 우지자네를 비판하지만, '마음은 매우 강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시 상황상 훌륭한 리더였던 요시모토의 급작스런 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에이로쿠 11년(1568년) 요전날의 슨푸 이마가와관의 공방전에서 다케다 신겐에 쫓겨 도토미에 도망친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공격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카케가와성을 포위했습니다. 에이로쿠 11년 말, 신겐이 가이에서 스루가로 진공(삿타토우케 전투)하는 것과 동시에, 이에야스는 미카와에서 도토미로 진공을 개시했습니다. 다음해에, 도쿠가와군에 의한 카케가와성 공방전이 개시합니다. 성주인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는 이마가와의 중신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에서의 굴지의 지장입니다. 도쿠가와측의 공격은 신통찮고 3월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이에야스 자신이 총대장이 되어 카케가와성 공방전에 참가합니다. 그때까지 도쿠가와의 공격을 잘 막고 있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마가와 멸망하다(1) 이마가와관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마가와 멸망하다(1) 이마가와관 공방전 에이로쿠 11년(1568년) 스루가에 침입한 가이의 다케다 신겐이 이마가와 우지자네의 저택 이마가와관을 공격했습니다. 삿타토우케 전투(삿타토우케 전투)에서 간단히 승리를 거머쥔 신겐은 그 기세를 몰아 이마가와관으로 쳐들어 갑니다. 이마가와관은 후에 슨푸성(駿府城)이 되는 곳이지만, 이때는 '성'이 아니라 '관'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탄한 장소에 건설된 건물이어서 농성이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우지야쓰도 이 이마가와관에서 방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사가미의 호조 우지마사(北条氏政)에게 원군의 요청을 하며 관의 배후에 있는 시즈하타야마성(賤機山城)에 농성 하며 호조의 원군을 기다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작전을 읽고 있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삿타토우케 전투, 신겐 스루가에 진공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삿타토우케 전투, 신겐 스루가에 진공하다 에이로쿠 11년(1568년) 스루가에 진공하려고 하는 다케다 신겐과 그것을 맞아 싸우는 스루가의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氏真)가 격돌한 '삿타토우케 전투(薩埵峠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 전투(오케하자마 전투)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목숨을 잃은 후, 뒤를 이은 것이 장남 우지자네(氏真)입니다. 그러나 동해도 제일궁 요시모토의 후계자 자리는 그에게는 너무 과중했던것 같습니다. 가신단의 마음은 주군에게서 떠나 이마가와가는 순식간에 쇠퇴해갔습니다. 우지자네의 어머니가 다케다 신겐의 여동생(죠우케이인)이였기 때문에 당분간은 손을 대지 않았던 신겐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키요스 동맹을 파기해 미카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손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엔로쿠 3년(1560년) 전국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중 하나인 오케하자마 전투가 있었습니다. 저번에 보았듯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2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오다가와의 국경선으로 도착합니다. 이런 가운데 구쓰카케에서 서쪽으로 이동 중이었던 요시모토 본대에게 희소식이 들려옵니다. 오다측이 설치하고 있던 츠케시로 와시즈를 중신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가 눈 깜짝할 순간에 점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군의 승리에 기분의 좋아진 요시모토는 근처의 오케하자마에 진을 쳐 군세를 쉬게 합니다. 한편, 와시즈가 점령된 일을 알게 된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은 야단 법석이 납니다. 게다가 요시모토군은 허세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의 전투(1)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출격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의 전투(1)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출격 에이로쿠 3년(1560년)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군에 출진 명령을 내렸습니다.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에이로쿠 3년(1560년)에 출진 명령을 내려 슨푸를 카케가와성, 인마성, 요시다성, 오카자키성, 치리우성과 벌써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던 도토우미에서 미카와의 성으로 이동해, 오와리의 국경을 넘고, 콘도우 카게하루(近藤景春)의 구쓰카케성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앞에는 이마가와가의 최전선 나루미성과 오다카성 한층 더 앞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요시모토의 출진은 상경이 목적이지, 노부나가와의 마찰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상경이 목적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설 쪽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이마가와의 철의 여인, 쥬케이니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이마가와의 철의 여인, 쥬케이니 쥬케이니(寿桂尼) 나카미카도 노부타네(中御門宣胤)의 딸로,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의 정실입니다. 자식으로 이마가와 우지테루(今川氏輝),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氏親), 즈이케이인(瑞渓院)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장남인 우지테루가 죽은 뒤에 삭발을 하고 법명을 받아 쥬케이니라고 하였다. 우지치카 , 우지테루, 요시모토, 우지자네(今川氏真, )의 4대를 거치면서 이마가와 가문의 정무를 보좌한 이마가와의 철의 여인입니다. 에이쇼 2년(1505년) 우지치카에게 시집을 와, 에이쇼 8년(1513년)에는 장남 우지테루, 차남 히코고로(彦五郎)를 낳고 에이쇼 14년(1519년)에는 요시모토를 낳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우지치카는 병에 걸려 드러 눕게 되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가문과 남편을 잃은 비극의 여인, 레이쇼우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가문과 남편을 잃은 비극의 여인, 레이쇼우인 레이쇼우인(嶺松院)은 스루가국의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딸로 키요스 삼국동맹의 일환으로 다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와 결혼하였습니다. 다케나 노부토라의 딸이자 신겐의 누나 죠우케이인 (定恵院)이 텐몬 19년(1550년)에 죽습니다. 사실 그녀는 키요스 삼국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결혼한 것이었지요. 키요스 동맹의 지속, 유지, 강화를 위해 이번에는 레이쇼우인과 다케다 신겐의 장남 다케다 요시노부의 결혼이 결정됩니다. 텐몬 21 년 (1552) 겨울 레이쇼우인은 슨푸을 떠나 가이을 향해갔습니다. 그리고 츠츠지가사키 관(躑躅ヶ崎館)에 두명을 위해 만든 건물로 들어가지요. 그리고 당시 15세이던 요시노부와 결혼합니다. 이후에 텐몬 22년에는..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안쇼우성 전투 일본 전국시대;안쇼우성 전투 텐몬 18년(1549년) 스루가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부하 타이겐 셋사이(太原雪斎)가 미카와 안쇼우성을 공격해 성주 오다 노부히로(織田信広)를 납치한 안쇼우성 전투가 있었습니다. 텐몬9년(1540년), 오와리의 오다 노부히데가 스루가의 이마가와가에 속하고 있던 미카와의 오카자키 성주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広忠)가 지키는 안쇼우성을 빼앗고 나서 오와리와 미카와의 분쟁은 잠잠했습니다. 이때의 노부히데는, 또 하나의 이웃나라인 미노의 사이토도산과 전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텐몬 18년(1549년)하극상의 전국시대답게 마쓰다이라 히로타다가 가신에게 참살된다고 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미카와의 마츠다이라의 주군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많이 당황하게 합니다. 이전부터 오다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