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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일본 전국시대; 겐신의 닌자, 노키자루의 활약, 나나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겐신의 닌자, 노키자루의 활약, 나나오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노토(能登) 나나오성(七尾城)을 공략중이던 우에스기 겐신에게 나나오성의 배신자가 밀서를 보냈습니다. 보통 가이의 범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으로 표현되고,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이미지가 강해 겐신과 대립한 세력으로 보통 신겐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신겐은 명실 상부한 관동 관령이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발호하는 관동의 여러 세력을 억제해야 하는데다가, 쇼군 요시아키를 내쫓은 노부나가와도 크게 대립했지요. 이때 요시아키의 뜻에 응한 반 노부나가 포위망에 신겐과 겐신이 모두 있어, 이들간의 눈에 보이는 대립은 잦아 들게 됩니다. 그래서 신겐은 토카이(東海)를 목적으로 상경을 시도하나, 뜻 밖에 병에 걸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후세 전투 일본 전국시대;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후세 전투 텐몬 22년(1553년) 사이강을 건너 후세(布施)에 포진 하고 있던 우에스기 겐신의 군이, 다케다 신겐군의 선봉군을 격퇴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후세 전투 입니다. 겐신과 신겐은 최고의 라이벌 답게 치열한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벌였는데, 이 가와나카지마는 총 5회에 걸쳐 벌어지지만, 제일 치열하고 1:1 대결마저 있는 제 4차 전투를 일반적으로 가와나카지마전투로 간주합니다. 아무튼 제1차와 제2차의 전투 사이에 이번에 다룰 후세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당시는 나가오 가게토라)을 의지한 요시키요는 카츠라오성을 탈환합니다. 이것이 제1차 가와나카지마의 전투의 서막, 사라시나 야와타 전투입니다. 겐신의 개입을 안 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전초전 시라시나 야와타 전투 일본 전국시대;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전초전시라시나 야와타 전투 텐몬 22년(1553년) 다케다 신겐에게 카츠라오성을 빼앗긴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신겐의 진을 습격한 사라시나 야와타 전투(更級八幡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이를 일반적으로 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로 간주하는 듯 합니다. 에치고의 수호인 우에스기가 부하 수호대 나가오 다메카게가 하극상으로 우에스기의 실권을 빼앗아 에치고의 지배에 나서지요. 다메카게의 사후 형제 사이 상속자 분쟁이 일어나고, 거기서 승리해 카스가야마성(春日山城)에 들어온 것이 바로 나가오 가게토라, 후의 우에스기 겐신입니다. 그러나 겐신이 상속한 무렵 아직 에치고의 북쪽에는 아가키타슈(揚北衆)라고 불리는 고쿠진들이 독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분 상태가 계속 되고 있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호조 소운의 사가미 재패; 이라이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호조 소운의 사가미 재패; 이라이성 공방전 에이쇼 13년(1516년), 전국의 풍운아 호조 소운이 아라이성공방전을 마지막으로 사가미를 재패합니다. 사가미일대를 거의 손에 넣은 소운이지만, 아라이성을 거점으로 하는 미우라가에게 만은 아직 섣부르게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당시의 미우라씨의 당주는 미우라 요시아쓰였지요. 당시 80세를 넘은 소운은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미우라가를 목적으로 정합니다. 이윽고, 에이쇼 13년(1516년), 관동 관령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 도모오키(上杉朝興)가 아라이성을 구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해 이때를 기회라고 간파한 소운도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4년간이나 느긋하게 기다린 소운이었지만,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매우 민첩했지요. 조속히, 도모요시의 신.. 더보기
일본전국시대; 호조 소운의 사가미 재패의 시작, 오카자키성 전투 일본전국시대; 호조 소운의 사가미 재패의 시작, 오카자키성 전투 에이쇼9년(1512년), 호조 소운에게 사가미 오카자키성을 공격받은 미우라 요시아쓰가 스미요시성에 패주 했습니다. 소운은 바람처럼 등장해(이즈습격) 오다와라성도 손에 넣고(오다와라성 탈취) 호리코시쿠보도 멸하고, 이즈 일대의 지배를 강고한 것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편으로는 공사를 보좌하는 역할 관동 관령직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양 우에스기가의 분쟁은 어느덧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의 구적의 코가쿠보와의 전투로 넘어가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가는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나 그 부하인 소운을 의지하게 되어, 이윽고 에이쇼 원년(1504년) 쿠즈류가와 전투(쿠즈류가와 전투)가 있었지만, 승패는 불분명했지요. 하지만 확실해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나가오 다메카케의 에치고 평정 일본 전국시대;나가오 다메카케의 에치고 평정 에이쇼4년(1507년) 8월 7일, 나가오 다메카케(長尾為景)에 에치고를 빼앗긴 우에스기 후사요시(上杉房能)가, 마츠노야마고우(松之山郷) 아마미즈코시(天水越)에서 할복 했습니다. 나가오가는 대대로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를 시중드는 수호대 집안입니다. 관동 관령직을 독점하고 있던 같은 우에스기가 내에서,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가와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가 관동의 패권을 두고 싸운 에이쇼 원년(1504년)의 쿠즈류가와 전투(쿠즈류가와 전투)에서는 다메카케가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를 도와 참전했었습니다. 이런 그가 어째서 우에스기가에 반기를 들게 되었을까요? 가마쿠라쿠보가 기억나시나요? 그런데, 에치고에는 원래 그 토지를 지배하는 강력한 호족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우에스기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관동의 정세가 움직이다, 타치강변 전투 일본 전국시대;관동의 정세가 움직이다, 타치강변 전투 에이쇼 원년(1504년),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와 호조 소운이 동맹해, 대립하고 있던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와 타치강변(立河原)에서 만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는 관동을 기반으로 하는 무가 정권이면서, 교토에 정무의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관동 지배를 위한 특별한 직무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마쿠라쿠보와 관동 관령입니다만, 그들은 차츰 교토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게 되어 서서히 쇼군과 대립하게 됩니다. 쿠보의 보좌인 관동 관령은 우에스기가가 독점하고 있고, 관동의 힘이 커져감에 따라 그 세력도 커져갔습니다.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가와 야마노우치 우에스기가가 교대로 관동 관령을 맡게 됩니다만 권력은 독점하고 싶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