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호조 소운의 사가미 재패; 이라이성 공방전
에이쇼 13년(1516년), 전국의 풍운아 호조 소운이 아라이성공방전을 마지막으로 사가미를 재패합니다.
당시 상황도
사가미일대를 거의 손에 넣은 소운이지만, 아라이성을 거점으로 하는 미우라가에게 만은 아직 섣부르게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당시의 미우라씨의 당주는 미우라 요시아쓰였지요. 당시 80세를 넘은 소운은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미우라가를 목적으로 정합니다. 이윽고, 에이쇼 13년(1516년), 관동 관령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 도모오키(上杉朝興)가 아라이성을 구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해 이때를 기회라고 간파한 소운도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4년간이나 느긋하게 기다린 소운이었지만,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매우 민첩했지요. 조속히, 도모요시의 신병을 확보하자 아라이성에 도착한 약간의 원군은 혼란에 빠집니다. 그들의 중요한 '주'가 포로 상태가 되어, 그 앞의 계획은 모두 백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그 사이에 아라이성의 물자는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기가 급격히 저하한 그들과는 다르게, 높은 사기를 지닌 소운의 군세는 아라이성의 물자가 바닥난 것을 알았는지 엄청난 기세로, 에이쇼 13년(1516년) 아라이성에 돌입합니다.
이라이성 모형
이 때의 호죠군의 총공격은 굉장한 것으로 많은 미우라의 장병의 피로 근처의 바다가 새빨갛게 물들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이 장소를 '기름 항아리' 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아무튼 성내에서 농성하던 요시아쓰 부자는, 이 상황을 눈앞으로 하고 패배를 직감해 할복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소운이 염원하던 사가미 제패를 완수한 것입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집권이 된 호조씨와 구별하기 위해, 후호죠가로 불리는 소운의 호조가는 이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오다와라성이 점령 당하기까지의 약 70여년 동안 군림하며 전국시대의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이로부터 2년 후 아들에게 다이묘 자리를 맡긴 소운은 그 다음 해 88세를 일기로 전국에 그 이름을 드높인 채로 천수를 다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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