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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가쓰이에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바타 가쓰이에의 배수의 진, 야스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바타 가쓰이에의 배수의 진, 야스가와 전투 겐키 원년(1570년) 오다 노부나가가 쵸우코지성(長光寺城)을 맡긴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가 롯카쿠 부자를 물리친 야스가와 전투(野洲川の戦い)가 있었습니다. 나가마사의 배신으로 위기에 빠진 노부나가는 겨우 교토로 돌아왔습니다.(가네가사키 퇴각) 그리고 교토를 나와 본거지 기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도중 비와호(琵琶湖)의 동남에 위치하는 쵸우코우지성의 성주로 시바타 가쓰이에를 임명해, 여기를 지키게 했습니다. 노부나가의 철퇴를 호기라 파악한 것은 다름아닌 롯카쿠 죠우테이(六角承禎), 타카하루(義治) 부자 였습니다. 롯카쿠가는 노부나가 상경때에 대패해(칸노우죠성 전투) 이후, 코우가나 이세등에서 단발적인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가의 후계자 분쟁, 이나오이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가의 후계자 분쟁, 이나오이 전투 코우지2년(1556년) 오와리 오다이(小田井川)강에서 자신과 대립하는 남동생 노부유키(信行) 에 가담하는 하야시 미마사카(林美作),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등을 오다 노부나가가 격퇴한 이나오이 전투(稲生の戦)가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어릴 때는 심각한 양아치였다고 합니다. 반면에 남동생 노부유키는 똑똑하고 명석하기로 유명했습니다. 텐분 20년(1551년) 아버지 노부히데가 죽은 장례식에서 노부나가는 양아치스럽게 입고와 불전에도 분향을 내던지는 무례를 범했지만, 노부유키는 옷을 제대로 입고 와 시종일관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후계로 노부유키를 세우자는 소리가 가신중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텐분 22년(1553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시바타성 함락, 시바타 시게이에의 할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시바타성 함락, 시바타 시게이에의 할복 덴쇼 15년(1587년) 10월 28일, 우에스기 카게카쓰(上杉景勝)의 총공격을 받고 있던 시바타성(新発田城)이 함락 되어, 시바타 시게이에(新発田重家)가 할복 했습니다. 시게이에의 시바타 가문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에 걸쳐 에치고 북부에 세력을 자랑한 아카키타중(揚北衆)인 사사키(佐々木) 가문의 분가 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가마쿠라 시대에 막부에서 장원의 지도우(地頭:장원 관리직)을 하라는 지시를 받아, 쭉 이 땅을 지켜 왔다고 하는 자긍심도 있어, 남북조 이후에 수호가 된 우에스기, 하물며 그 아래의 수호대인 나가오와는 계속 갈등하던 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족끼리의 분쟁이나 분열을 반복하며 서서히 힘이 쇠약해져 이윽고 나가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6) 가쓰이에와 오이치노가타의 죽음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6) 가쓰이에와 오이치노가타의 죽음 덴쇼 11년(1583년)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한 시바타 가쓰이에가 들어간 키타노쇼성을, 마에다 토시이에를 선봉으로 하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포위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사후 삼남의 간베 노부타카를 지지한 오다가 중신 시바타 가쓰이에와 장손 산포시를 지지한 하시바토 히데요시에 의한 사실상의 노부나가의 후계자 분쟁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한 가쓰이에는 본거지인 에츠젠 기타노쇼로 퇴각했습니다. 전원 합쳐도 약 3,000 정도 뿐이었던 가쓰이에는 키타노쇼성의 객실에 가신을 모아 '내가 전장에서 돌아온 것은 죽는 것이 무섭기에 도망친 것이 아니라, 전황에 휩쓸렸을 뿐이다. 내가 겁장이라 불리는 것은 괜찮지만 너희까지 매도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3) 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3)히데요시, 가쓰이에를 꺾다 덴쇼 11년(1583년),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사이에 발발한 오다가내 분쟁 시즈가타케 전투가 있었습니다. 혼노지에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 사후(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의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린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장손 산포시를 추천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노부나가의 장례까지 본인이 맡습니다. 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코베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노카타(お市の方)를 아내로 맞이해 히데요시에 대항합니다. 그리고 겨울을 맞이해 에츠젠에서 움직일 수 없음을 간파한 히데요시가 반대세력을 짖누르는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2) 사쿠마 모리마사, 하시바군을 기습하다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2) 사쿠마 모리마사, 하시바군을 기습하다 덴쇼 11년(1583년), 비와호의 북동쪽 기슭에서, 1개월에 걸쳐 대치하고 있던 시바타 가쓰이에군과 하시바 히데요시군사이에, 히데요시의 부재중을 확인한 가쓰이에가 사쿠마 모리마사를 시켜 히데요시의 성채를 급습하여 시즈가타케 전투가 발발했습니다. 혼노지에 쓰러진 오다 노부나가 사후(혼노지의 변) 미쓰히데와의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넘어뜨린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에서 노부나가의 장손 산포시를 추천하고 스스로 후견인이 되어 노부나가의 장례까지 본인이 맡습니다. 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코베 노부타카를 후계자로 추천하고 노부나가의 여동생 오이치노카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일본 전국시대;시즈가타케 전투(1) 누가 천하를 쥘 것인가? 덴쇼 11년(1583년) 봄 시바타 가쓰이에의 키타노쇼 출진을 들은 하시바 히데요시가 결전을 대비해 오미 사와야마성(佐和山城)에 들어가 시즈가타케 전투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 천하를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혼노지의 변)에서 죽은 뒤에,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해 주군이 원수를 갚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 뒤에 열린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를 유리하게 진행시켜 후계자를 본인이 추천하는 노부나가의 손자 산포시로 결정하고 후견인이 됩니다. 물론 이에 오다의 가로 시바타 가쓰이에, 칸베 노부타카 그리고 다키가와 가즈마스는 큰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일본 전국시대;키요스 회의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7일 죽은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에서 장손 산포시(三法師)가 상속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것이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주군의 죽음을 복수하려 하시바 히데요시가 미쓰히데를 야마자키의 전투(야마자키 전투)에서 무찌른 것이 6월 13일의 일이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생전에 뒤를 잇게한 장남 노부타다가 노부나가와 함께 죽어버렸기 때문에 오다군은 시급히 주군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키요스 회의가 열립니다. 이 회의를 소집한 것은 오다가의 필두 가로인 시바타 가쓰이에였습니다. 그리고 회의에 출석한 인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다군 호쿠리쿠로 진공하다, 우오츠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오다군 호쿠리쿠로 진공하다, 우오츠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나카조 가게야스(中条景泰)등이 할복해 우오츠성(魚津城)이 함락되어 시바타 가쓰이에등의 오다군 이 호쿠리쿠(北陸)를 제압했습니다. 덴쇼 3년(1575년), 나가시노 전투로 다케다를 물리친(나가시노 전투) 오다 노부나가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이었습니다. 겐신은 나나오성을 점령하고(나나오성 공방전) 테도리가와에서 시바타 가쓰이에가 이끄는 오다군을 몰살 시키나(테도리가와 전투), 덴쇼 6년 초 급작스레 죽어(겐신 사망겐신 사망), 그 후계를 놓고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이 일어나 버립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부나가는 군을 진군시켜 엣츄를 정복합니다. 게다가 덴쇼 8년(1570년)에는, 시바타 가쓰이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카가 잇코우 잇키의 종결, 토리고에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카가 잇코우 잇키의 종결, 토리고에성 공방전 덴쇼 8년(1580년) 아직 남은 카가 잇코우 잇키의 거점 토리고에성을 시바타 가쓰이에가 함락 시켰습니다. 장장 10년에 걸쳐 전개된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의 전투는 한 때 우에스기 겐신이 참여하거나 모리의 수군이 진출하거나 아라키 무사시게의 반란 등으로 고생하던 노부나가지만 겐신의 사망, 철갑선의 건조, 덴노의 칙명 등으로 위기를 극복해 냅니다. 그리고 나서 덴쇼 8년 노부나가는 시바타 가쓰이에를 시켜 카가의 잇코우 잇키 진압을 명하고, 가나자와고보가 점령당하며(가나자와고보 공방전) 카가와 잇코우 잇키는 일단락 됩니다. 그러나 본거지가 점령당했다고 해서 끝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여러 지역에서는 잇코우 잇키의 세력이 발호하고 있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