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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토바 후시미 전투(1) 오사카에서 벌어진 첫 서양식 해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토바 후시미 전투(1) 오사카에서 벌어진 첫 서양식 해전 게이오 4년(메이지 원년 1868년) 1월 2일, 오사카만에 들어간 막부 군함 카이요우마루(開陽丸)가 만내에 정박중이던 사츠마 번선 헤이운마루(平運丸)에 포격 했습니다. 막부 토벌을 계획하는 사츠마번과 조슈번에 도쿠가와막부는 대정봉환을 실시해 버립니다. 물론, 다른형태로 정권을 잡으려는 시도를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만, 형태만으로는 덴노가 확실히 권력을 얻은 것입니다. 이에, 삿쵸 측은 명분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삿쵸는 결국 왕정 복고의 대호령이라고 하는 쿠데타를 결행해, 막부를 제거하려 합니다. 그리고 에도 내에 테러행위를 실시해, 막부에 대한 도발을 시작합니다. 이윽고, 그 도발에 참지 못한 막부가 에도에 있는 사츠마 번저.. 더보기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쇼군 취임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쇼군 취임 겐큐 3년(1192년) 7월 12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정이 대장군(쇼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일본 무가를 통솔하는 것은 '쇼군'입니다. 이 쇼군은 '정이대장군'이라는 뜻으로, '정이'란 홋카이도를 정벌한다 라는 뜻입니다. 즉, 정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시에 새로 생기는 직책이었습니다. 이 쇼군이 거주하는 곳이 '막부(幕府)'였습니다. 이 말은 중국 고전에서 '장군의 막영을 막부라고 한다'는 기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갠큐 3년(1192년) 7월 12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쇼군에 취임한 것으로 이 날을 보통 '가마쿠라 막부'가 생겨난 날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막부가 생긴 날을 이(1) 이(1) 쿠(9) 니(2)라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쇼군이 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아시카가 요시아키, 쇼군이 되다 에이로쿠 11년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의 조력으로 종4위에 제수되고, 결국 제 15대 쇼군이 되었습니다. 13대 쇼군 요시테루가 히사히데와 미요시 삼인중에게 암살 당한 후에, 요시아키는 환속해 쇼군이 되려 합니다. 한편, 미노의 사이토 세력을 몰아낸 오다 또한 천하를 쥐기 위해 상경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노부나가는 요시아키의 상경을 도왔습니다. 그의 앞길을 막는 롯카쿠가를 단 3일로 격파하고 수도로 들어간 그는 미요시 3인중 마저 내쫓아 버립니다. 재밌는 것은 이 일련의 전투에서 전에 미노의 세력 즉, 도산의 가신이었던 이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최전선에 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쇼군직 복위를 도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아시카가 요시아키, 노부나가에게 쫓겨나 쇼군직 복위를 도모하다 덴쇼 원년(1573년) 무로마치 막부 제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있는 우지 마키지마성(槇島城)을 오다 노부나가가 공격했습니다. 어린 시절 쇼군직 계승과는 거리가 멀어 절에 들어가 생활을 하던 중, 미요시 삼인중과 히사히데의 손으로 쇼군이 죽고, 허수아비 쇼군이 세워지자, 이에 분노한 요시아키는 여러 세력을 끌여들여 자신이 쇼군이 되려 합니다.(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그러나 상대는 그 미요시가, 많은 전국 다이묘들은 그에게 답장을 해 주지 않지요. 그러던 그를 구해준 것이 오다 노부나가, 노부나가는 파죽지세로 상경해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만듧니다.(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그런 노부나가를 '아버지'라고 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요시아키에게 5개조 정서를 보내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요시아키에게 5개조 정서를 보내다 겐키 원년(1570년) 초, 오다 노부나가가 제15 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5개조 정서(五ヵ条の掟書)를 보냈습니다. 상경이후(수도에 입성한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와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관계는 당분간 양호했습니다. 요시아키는 연하의 노부나가의 일을 '아버지'라고 불러, 노부나가가 오와리로 돌아갈 때에는 일부러 교토의 동쪽의 끝까지 전송에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마음속은 요시아키는 단지 상경의 도구일 뿐으로 최초부터 스스로 천하를 장악하려고 했지요. 후쿠쇼군이나 관령의 직위도 거절해, 사카이, 오츠, 쿠사츠의 지배만을 요구한 노부나가를 요시아키를 비롯한 조정에서는 '욕구가 없다'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직위를 거절하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직위를 거절하고 실리를 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직위를 거절하고 실리를 취하다 에이로쿠 12년(1569년)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도모해 오오기마치덴노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칙사를 보내 부쇼군(副将軍)에 임명하려 했습니다. 요시아키를 받들어 상경한 노부나가는 무력으로 미요시삼인중을 교토에서 내쫓아 요시아키를 기쁘게 하고 덴노에 대해서도 대궐의 수복등을 도와 조정의 지지도 얻게 됩니다. 요시아키는 3살 어린 노부나가의 일을 '아버지'라고 불러 그 공헌에 보답으로 관령직에 임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거절합니다. 그것을 노부나가가 관령직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요시아키가 제106대 오오기마치덴노에 제의해 '노부나가를 부쇼군에 임명하려 한다'는 사자를 노부나가에게 보냅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확답을 피하고 후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아시카가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일본 전국시대; 아시카가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에이로쿠8년(1565년) 나라의 코후쿠지에 유폐 되고 있던 가쿠게이(覚慶)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등의 안내로 오미로 탈출했습니다. 이 가쿠게이라고 하는 스님은 누구일까요? 어릴 적에 나라의 코후쿠지에 들어가 29세까지 불문 외곬의 길을 걸을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로마치 막부 제 12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 형은 제13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바로 무로마치 막부 15 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입니다. 요시테루를 살해한 히사히데와 미요시 삼인중은 차기 쇼군에 요시테루의 아버지 요시하루의 남동생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데를 옹립하려합니다. 원래 아시카가 막부는 대대로 쇼군직을 이어야 할 적자 이외는 절에 들어가 승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 암살당하다 에이로쿠8년(1565년) 무로마치 막부 제 13 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마츠나가 히사시데를 비롯한 미요시의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오닌의 난(오닌의 란) 이후 오다 노부나가가 허울만 남은 막부를 파괴하기까지 무로마치 막부는 껍데기만 남아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수도에서 쫓겨나기까지한 쇼군의 위상을 찾으려는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유지를 이어 당시 최고의 권세를 가진 미요시 나가요시를 상대에 분투한 제13 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여러번의 교전 끝에 나가요시와 화해해 에이로쿠 원년(1558년) 겨우 교토로 돌아와 쇼군 직무를 해 나가게 됩니다. 유능하고 무용이 뛰어난 쇼군이 직무를 잘 해나가는 것을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실패한 첫 상경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다 노부나가, 실패한 첫 상경 에이로쿠2년(1562년) 노부나가가 처음으로 상경합니다. 노부나가의 상경이라고 하면 에이로쿠 11년(1568)년의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은 상경이 유명합니다만, 그 전 오와리 통일을 완수한 이후 상경을 감행했었습니다. 당연히 목적은 당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알현 하고 자신이 오와리를 지배하는무장임을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상경은 전국의 눈이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전국의 장수들과 덴노에게도 자신을 알리려 했습니다. 노부나가는 500명이라는 적은 군사를 이끌고 상경을 결의 했습니다. 파격적인 것으로 유명했던 노부나가 답게 터무니없게 눈에 띄는 분위기의 차림새로 상경 했다고 합니다. 수도의 사람들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기묘한 생김새였다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정치편; 전국시대 조정이 한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일본 전국시대 정치편;전국시대 조정이 한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전국시대에 거의 유명무실이 되었다고는 하나, 덴노와 조정의 명분은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덴노와 조정에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칙사(勅使)와 어사(御使) 칙사는 덴노를 중심으로 조정의 총의를 모아 파견 되었습니다. 원래는 절과 신사에 파견된 쿠로우도(蔵人), 벤칸(弁官)을 가르키는 말이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격식 높은 무가에, 위문이나 전승 축하를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또 다이묘에게 물품을 하사하기 위한 쿠교(公卿)도 파견되었습니다. 치벌의 윤지(治罰の綸旨) 윤지는 덴노의 명령서로, 그 중 치벌의 윤지는 역적토벌의 명령입니다. 덴노가 쿠교, 쿠로우도, 벤칸을 시켜 작성시킵니다. 상황(전의 덴노가 양위한 뒤의 직위)가 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