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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다카모토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츄고쿠의 패자, 모리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츄고쿠의 패자, 모리 가문 일본 전국시대 최고의 다이묘를 손꼽자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모리 모토나리입니다. 지략과 모략으로 일개 토호에서 시작해 츄고쿠를 재패하는 대 다이묘가 된 모리 가문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모리 가문의 성립 모리 가문은 계도에 따르면 아메노호히노미코토(天穂日命)를 선조로 삼고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냥 다이묘들이 자신의 가계를 신성화 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실제로는 오오에(大江)가문이 선조인듯 합니다. 그 자손들 중 사가미의 모리장(毛利庄)을 영유하며, 토지의 이름을 따서 '모리' 를 자칭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가문들에게 밀려 츄고쿠 아키국의 요시다장의 지도우(地頭)가 되어, 여기서 츄고쿠에서의 모리 가문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모리 가문의 중..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모토나리, 아마고가의 방어선을 뚫다; 하쿠로쿠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모토나리, 아마고가의 방어선을 뚫다; 하쿠로쿠성 공방전 에이로쿠6년(1563년) 모리 모토나리가, 깃카와 모토하루,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와 함께, 아마고가의 이즈모(出雲) 하쿠로쿠성(白鹿城)에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이와미 은광을 탈취한 모토나리는(이와미 은광 쟁탈전) 드디어, 아마고가의 이츠모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엔로쿠5년(1562년) 차남 깃카와 모토하루,삼남 고바야카 다카카게와 함께 총원 1만 5,000의 군사를 인솔한 모토나리는 이와미를 경유해 이즈모로 들어옵니다. 이 행동만으로 많은 이즈모의 쿠니진들이 시원스럽레 아마고를 단념해 모리의 산하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아라와이(洗合)에 도착한 모토나리는 츠케시로을 구축합니다. 동시에 아마고의 본거지 갓산토다성을 견제하기 위해, 거기에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쓰쿠시마 전투(5) 모리군의 추격과 다카카게의 분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쓰쿠시마 전투(5) 모리군의 추격과 다카카게의 분전 코우지 원년(1555년) 이쓰쿠시마 전투로, 스에 하루카타의 맹장 히로나카 타카카게가 전사 했습니다. 주군이 할복하고 군세가 이지러지는 상황에서 저항을 계속하고 있던 것이, 하루카타의 용장 히로나카 타카카게였습니다. 타카카게가는 키요카즈 겐지의 유파를 이어받는 명가였고, 단노우라 전투로 헤이케가 멸망한 뒤에 대대로 이와쿠니의 영주를 맡아 오오우치가의 가신들 중에서도 중심적 존재의 가계였습니다. 오오우치가의 제30대 당주 오오우치 요시오키와 그 아들 요시타카의 2대를 시중들고 있던 타카카게는 오오우치가의 신하가 된 모리가를 구하기 위한 안쇼우성 전투에서도 대활약했으며 오오우치가의 라이벌인 아마고가와의 일련의 항쟁에서는 모토나리와 함..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1) 미남의 기준 일본 전국시대 기타편;전국시대의 미남, 미녀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1) 미남의 기준 전국시대에는 다양한 무장들이 난립하는 전란의 시대였지만, 그래도 현재와 비슷하게 미남, 미녀가 선호되었었습니다. 먼저 미남의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미남의 기준은 키가 크고, 살쪘으며, 머리카락이 풍성할 것 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조건을 가진 미남들은 누가 있을까요? 유명 무장들 중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미녀를 보고 싶으면 옆의 링크를 눌러 주세요.(전국시대의 미녀) 오다 노부나가 청년의 무렵에 여자로 잘못 보았을 정도로 미남이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상당히 잔혹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 노부나가가 꽃미남이었다니 충격적입니다. 특별히 젊었을 때 초상화를 준비해 봤습니다. 여자 같나요? 오다 히데타카(織田秀孝) 노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츄고쿠의 국모, 묘쿄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츄고쿠의 국모, 묘쿄 묘쿄(妙玖)는 츄고쿠의 패자,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의 정실입니다.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름이 특이한 데요, 법명이기 때문입니다. 본명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킷카와 쿠니쯔네(吉川国経)의 딸입니다. 묘오 8년(1499년) 아키국 쿠니진 킷카와 쿠니쯔네의 딸로 오구라산성 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장한 후 아키국의 유력 쿠니진 모리가의 일족인 모리 모토나리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언제 결혼을 했느냐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모토나리와 묘쿄는 매우 사이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력 다이묘 또는 쿠니진이라면 측실, 첩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모토나리는 묘쿄 이외의 처첩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모토나리가 자식들을 걱정하면서 썼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어머니는 위대하다, 오자키노쯔보네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어머니는 위대하다, 오자키노쯔보네 오자키노쯔보네(尾崎局)는 나이토 오키모리(内藤興盛)의 딸로 모리 다카모토(毛利隆元)의 정실입니다.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 쯔와노보네(津和野局)를 낳습니다. 그녀는 나이토가에서 태어났지만, 주군인 오오우치가문의 양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아키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던 모리 모토나리의 장남 다카모토의 정실로 시집을 가게 되지요. 코우치 3년(1557년)에 오오우치가 멸망합니다. 그리고 에이로쿠 6년(1563년)에는 남편인 다카모토가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지요. 그녀는 어린 데루모토의 양육에 전념합니다. 겐키 2년(1571년) 모토나리가 죽었을 때 데루모토의 삼촌인 킷카와 모토하루와 코바야카와 다카카게에게 데루모토의 후견인이 되기를 요청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