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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테 마사무네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오슈의 패자, 다테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오슈의 패자, 다테 가문 전국시대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교토가 중심에 있는 기나이에 있엇기에 토호쿠 지방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방의 토호쿠 지방역시 전국시대의 전란에서 무사하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의 중심에 있었던 가문 중 하나가 다테 가문입니다. 다테 가문의 성립 다테 가문은 전통적인 명 가문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후예입니다. 요리토모(頼朝)의 오슈 정벌때 자신의 자식 네 명을 군에 종군시켜 다테군을 제수받아 '다테'라 칭하게 됩니다. 남북조시대에 들어서 다테 가문은 그 영지를 넓히며 세력 또한 넓히게 됩니다. 이 발전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무네토(宗遠)와 마사무네(政宗)입니다. 이때 그들은 쇼군가와 겨룰정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와 우에스기의 싸움, 마츠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와 우에스기의 싸움, 마츠가와 전투 게이쵸6년(1601년) 4월 26일, 시라이시성(白石城)을 출진한 다테 마사무네와 맞아 싸우는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무장등이 부딪친 마츠가와 전투(松川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와 같은 날에, 서군에 속하는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참모 나오에 키네츠구가 동군에 속하는 모가미 요시아키의 영지로 침공해 토호쿠의 세키가하라라고 불리는 하세도우 전투(하세도우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천하 판가르는 세키가하라가, 불과 반나절에 결착이 나 버립니다. 이에 부득이 하세도우성을 점령하지 못한 채, 우에스기군은 요네자와로 귀환하게 됩니다. 그러나, 토호쿠에 있어 동군은 모가미만이 아닙니다. 사실 모가미라면 우에스기의 적수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데와의 세키가하라, 하세도우 전투(1) 우에스기와 세키가하라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데와의 세키가하라, 하세도우 전투(1) 우에스기와 세키가하라 게이쵸5년(1600년) 9월 15일은 세키가하라의 전투가 있던 날입니다. 이날 데와에서는 데와의 세키가하라 하세도우 전투가 있었습니다. 나오에 키네츠구는 에치고의 나가오 가문의 가신 히구치 켄토요(樋口兼豊)의 아들로 태어나 나오에 카게쓰나(直江景綱)의 딸과 결혼하며 데릴사위로 들어가 나오에 가문을 잇습니다. 그의 투구에는 크게 사랑 '애'자가 붙어있는데 그래서인지 평생 측실을 두지 않고 아내와 지냈다고 합니다. 오타테의 란(오타테의 란)에 승리한 뒤, 우에스기 겐신의 뒤를 이은 카게카츠를 모시게 됩니다. 카게카츠는 그에게 막대한 신뢰를 안고 있어, 이 세키가하라의 무렵에 키네츠구는 중신 중의 중신인 필두(筆頭)였습니다. 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4) 다테 마사무네의 행보는?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세키가하라 전투(4) 다테 마사무네의 행보는? 게이쵸5년(1600년) 8월 12일, 우츠노미야성(宇都宮城)에 들어가 있던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가 기타메성(北目城)의 다테 마사무네에게, 협력해 동군에 서달라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게이쵸5년(1600년) 8월 12일에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서 다테 마사무네에게 협력 요청이 갑니다. 바로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동군에 서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키가하라는 기후에 있습니다. 즉, 마사무네와는 강 건너 불인 이야기 입니다. 미야기현, 게다가 우츠노미야성에 있는 히데타다는 이 후, 세키가하라에는 늦지 않고 참존해 동군의 주력이 됩니다. 한편 서군의 총대장인 모리 데루모토는 오사카성에 머문 채로, 주력은 이시다 미쓰나리와 그 동료들 입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복수 시도, 히토토리바시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복수 시도, 히토토리바시 전투 덴쇼 13년(1585년) 11월 17일, 아버지의 애도를 하는 전투로 다테 마사무네와 하타케야마, 사타케, 아시나의 연합군이 세토가와(瀬戸川)에 가설된 히토토리바시(다리)에서 펼친 싸움 '히토토리바시 전투(人取橋の合戦)'가 있었습니다. 이윽고 오슈의 패왕이 되는,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는 어릴 적 천연두에 걸려 한쪽 눈을 실명한 뒤에, 모친에게 버림 받아(요시히메) 위기에 빠졌었습니다. 명승 코사이 소우이쯔(虎哉宗乙)에게 도움을 받아 버틴 그는 15세에 첫 출진을 해, 다테의 옛 영토를 되찾습니다. 이때, 기나이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할복 해(혼노지의 변), 아케치 미쓰히데를 하시바 히데요시가 토벌한 야마자키의 전투(야마자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마사무네의 영토확장, 스리아게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마사무네의 영토확장, 스리아게하라 전투 덴쇼 17년(1589년) 6월 5일, 다테 마사무네가 무츠 아이즈의 아시나 모리시게(芦名盛重)를 물리친 스리아게하라 전투(摺上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파죽지세로 무츠, 데와의 평정을 하던 젊은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히토토리바시 전투)는 덴쇼17년의 초 봄에 모가미, 오사키 가문과 강화에 성공해, 4월에는 소우마 가문에 공격을 시작 합니다. 이 행동에 불안을 가지게 된 것이 무츠 아이즈의 아시나 모리시게(芦名盛重)입니다. 모리시게는 아버지 사타케 요시시게(佐竹義重)와 결탁해 다테를 공격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정보가 마사무네의 귀에 들어갑니다. 마사무네가 이미 아시나의 중신 이나와시로 모리쿠니(猪苗代盛国)와 내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오슈 발발 잇키의 변명에 성공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오슈 발발 잇키의 변명에 성공하다 덴쇼 19년(1591년) 2월 4일, 앞의 카사이, 오사키 잇키의 주모자라고 의심된 다테 마사무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변명하기 위해 상경했습니다.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덴쇼 18년(1590년) 7월에 오다와라성을 점령해, 관동에 군림한 호조를 멸망시켜(호조 멸망), 확실히 천하를 수중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 기세로, 오슈 정벌을 합니다. 그것은 전투라고 하는 것보다 오다와라성 공격때 참전하지 않았던 사람을 처분하고, 참전한 사람을 우대 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영지가 몰수된 토호쿠의 무장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남북조대부터 오슈를 지배하는 명문..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히데요시를 배반? 카사이, 오사키 잇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히데요시를 배반? 카사이, 오사키 잇키 덴쇼 18년(1590년) 11월 24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슈 정벌에 반발해 10월 무렵에 발발하고 있던 카사이(葛西), 오사키(大崎) 잇키로, 잇키 세력에 포위되어 고립상태로 농성하던 사누마성(佐沼城)의 키무라 요시키요(木村吉清), 키요히사(清久) 부자가 구출되었습니다. 덴쇼 18년(1590년)의 3월 말, 호조의 오다와라성 정벌에(오다와라 정벌 시작)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산하에 들어오지 않은 토호쿠의 여러 무장에게, 오다와라 공격에 참전하도록 명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3개월에 걸치는 싸움의 끝인 7월 5일에 오다와라성이 함락 된 후 호조 우지마사가 할복, 아들 우지나오가 코노야마에 들어가, 사실상 호조는 멸망..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오다와라성에서 히데요시를 만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오다와라성에서 히데요시를 만나다 덴쇼 18년(1590년) 6월 5일, 다테 마사무네가 오다와라성을 포위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군에 참가해 진을 쳤습니다. 덴쇼 18년(1590년), 천하를 눈 앞으로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마지막 장애물 호조를 공격하기에 즈음해, 아직 산하에 들어가지 않은 토호쿠의 무장들에게 참전을 호소했습니다. 이것은, 향후 히데요시의 산하에 들어갈지 말지를 묻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히데요시가 호조의 본거지인 오다와라성을 포위했습니다.(오다와라성 포위) 전년, 히데요시와 친분이 있던 아시나 가문을 스이아게하라(摺上原) 전투에서 멸해, 토호쿠의 대부분을 손에 넣은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는 히데요시에게서 재삼에 걸쳐 호출을 받고 있었습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테 마사무네 '오슈의 패왕'이 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테 마사무네 '오슈의 패왕'이 되다 덴쇼 17년(1589년) 11월 4일, 센도칠군(仙道七郡)의 이시카와 아키미츠(石川昭光)가 다테 마사무네의 산하에 들어왔습니다. 덴쇼 17년(1589년) 6월 5일의 스이아게하라(摺上原) 전투로 승리를 거둔 외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 한편 아시나 측은 그 퇴로가 강에 막혀 많은 희생자를 내 버렸습니다. 총대장의 아시나 모리시게(芦名盛重)는 어떻게든 거성 쿠로카와성(黒川城)으로 돌아와 분명히 쳐들어 올 다테군에 대해, 농성할 지, 혹은 또 군세를 정비해 요격할 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물론, 승리한 마사무네도 아시나 가문을 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성으로 돌아온 모리시게의 군세를 추격 해야 했습니다. 마사무네는 일단 이나와시로성(猪苗代城)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