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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시니대 역사편; 덴츄구미의 멸망, 요시무라 도라타로 할복

일본 유시니대 역사편;

덴츄구미의 멸망, 요시무라 도라타로 할복



 분큐 3년 연(1863년) 9월 27일, 토사번을 벗어나 떠돌이가 된 지사로, 덴추구미(天誅組)를 조직했던 요시무라 도라타로(吉村寅太郎)가 할복 했습니다. 



요시무라 도라타로



 텐포우 8년(1837년), 토사에서 촌장의 아이로 태어난 요시무라 도라타로 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과 동시에, 학문이나 검술에 매진 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검술의 스승인 다케치 한페이타(武市半平太)의 영향으로 서서히, 양이 사상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24세 때, 한페이타가 결성한 토사 킨노우도우(勤皇党)에 참가 합니다. 다음 해, 한페이타의 하인이던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만나, 그 사상에 감화 되어 토사번을 벗어나 떠돌이가 되는 것을 결의해, 사카모토 료마와 함께 번을 벗어나 떠돌게 됩니다. 그는 드디어 지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분큐 2년(1862년) 4월 23일에 일어난 데라다야 사건(데라다야 사건)에 관여하고 있었다고 여겨져 체포되어, 토사에 호송되어 투옥되어 버립니다.


 그 후, 죄가 용서되어 다음해인 분큐 3년년의 2월에는, 다시 교토로 되돌아갑니다. 정확히 같은 무렵, 상경하고 있던 제14 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오는 5월 10일 양이를 결행한다'고 해, 존왕양이파는 사기가 오르게 됩니다. 한편 도라타로도 메이지덴노의 외가쪽 친척 나카야마 타다미츠(中山忠光)와 알게 된 일을 계기로, 양이파 지사들과과의 연관관계가 강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5월 10일 양이파의 대표격인 조슈번이 간몬 해협을 통과하는 외국선으로 향해 포격을 개시한 시모노세키 전쟁이 발발했습니다.(시모노세키 전쟁) 이윽고 8월 13일 이번에는 쿠루메(久留米)의 지사 마키 이즈미노카미 야스오미(真木和泉守保臣) 등의 획책에 의해, 산조 사네토미(三条実美)등 양이파의 공경에게서 코우메이덴노의 행차가 발표됩니다. 이것의 목적은 당대의 덴노인 코우메이덴노가 다이와에 있는 초대 진무 덴노의 능에 참배해, 양이친정(攘夷親征)[각주:1]을 맹세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도라타로는 비젠의 후지모토 데츠세키(藤本鉄石), 미카와의 마츠모토 케이도우(松本奎堂)와 함께,나카야마 타다미츠를 대장으로 해, 덴노 행차보다 선행해 다이와로 가기 위해 덴추구미를 결성해, 14일에 교토를 출진했습니다. 3일 후의 8월 17일에는 야마토국 고죠대관소를(五条代官所) 습격해 대관 스즈키 겐나이(鈴木源内)와 5명을 살해해, 그 기세로 사쿠라이지(桜井寺)에 본진을 두어, 대관이 지배하던 토지를 덴노 직할의 영지로 하는 일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덴츄구미의 변입니다. 토벌 막부의 기치를 올린 것입니다.



덴쥬구미



 하지만, 불과 하루에 사태는 급변해 버립니다. 다음날 8월 18일의 정변이 일어납니다. 존왕양이파에 반대하는 나카가와노 미야(中川宮) 아사히고 친왕(朝彦親王)을 중심으로 하는 공무합체파의 문신들이, 아이즈번, 사츠마번과 결탁해, 양이파를 중앙 정계에서 일소 하는 쿠데타를 결행했습니다. 산조 사네토미 등 양이파의 공경과 조슈번은 교토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에 정치적인 후원자를 잃어 버린 덴쥬구미, 애초에 양이파에서도 급진적인 덴쥬구미의 행동은 좋게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완전히 고립된 덴츄구미에게 막부의 토벌군이 파견됩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이전부터 존왕양이파의 주민들이 대부분 사는 토츠가와로 피해 거기서, 1,000명 뿐인 군사를 모아 대립하는 야마토의 타카토리성(高取城)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대패 당해, 도라타로는, 요시노군 와시카구치로 피합니다. 9월에 들어가, 덴쥬구미의 간판이었던 나카야마 다다미츠에게 역적의 조(逆賊の詔)가 발표되기에 이르자, 덴쥬구미는 괴멸 상태가 됩니다. 분큐 3년 연(1863년) 9월 27일, 숨어 있던 것을 기슈, 히코네, 아이즈번의 군사에게 발각되어 총격을 받아서 중상을 입은 그는 할복했습니다.


吉野山 風に乱るる もみじ葉は 

요시노산에 바람에 이지러지는 단풍잎은


我が打つ太刀の 血煙と見よ

우리가 찬 태도에 튀긴 피라 봐주게

 

 역적으로 죽은 그였지만, 메이지 시대에 명예가 회복되어 사카모토 료마와 함께 관위까지 주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 그에게는 저승에서 이 명예로운 것을 반기고 있지 안았을 까요.

  1. 천황 스스로가 전쟁하는 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