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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겐페이 쟁란/역사편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겐페이 전투(16) 아와즈 전투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겐페이 전투(16) 아와즈 전투



 칸랴쿠 3년(1184년) 1월 21,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명령을 받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経)와 전투한 키소노 요시나카(木曽義仲)가 비와호 부근인 아와즈에서 패배해 전사했습니다.



아이즈 전투 개요도



 17일 노도와 같이 우지가와를 넘어 온 요시츠네군에 요시나카군은 밀리기만 합니다. 때마침, 반목 하고 있던 숙부 유키이에(行家)를 토벌하기 위해, 젖형제 히구치 지로우(樋口次郎)에게 군사를 붙여 배웅했던 직후로 요시나카군은 허술했습니다. 몇 만이라고 하는 가마쿠라에서 온 요리토모의 대군에, 몇 안 되는 수세의 요시나카군이 맞겨룰 수 있을 리도 없습니다. 요시나카 군은 서서히 후퇴합니다. 반면 요시츠네군은 고세를 점령하고 방비를 시작해 로크죠가와라(六条河原)의 근처에서 드디어 요시나카군은 뿔뿔이 흩어져 버립니다. 대장 요사나카를 따르는 군사는 불과 7기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어떤 때에는 오빠와 여동생, 어떤 때에는 연인, 그리고 어떤 때에는 일기당천의 무사로서 요시나카와 함께한 여자 무사 토모에 고젠(巴御前)도 있었습니다. 



아와즈 전투 그림



 여기서, 요시나카에게 남겨진 선택은 두 가지 뿐입니다. 서해까지 무사히 달아나 타이라 가문과 손잡던지, 탄바를 통해 호쿠리쿠로 달아나 현지에서 재기를 할 지입니다. 만약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요시나카는 재기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왠지 세타로 향합니다. 예전, 요시츠네의 군세를 막기 위해 우지에는 자신이 이끄는 500기가, 세타에는 800기, 요도에는 300기의 군세를 파견해 놓고 있었습니다.  세타를 지키던 대장은 바로 이마이 시로우 카네히라(今井四郎兼平)였습니다. 그는 토모에 고젠의 친오빠로, 요시나카와 젖형제이며 절친한 친우였습니다. 요시나카는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형제의 생사를 알기 위해 세타로 향한 것입니다.


 두 명은 기적적으로 오츠의 근처에서 재회합니다. 카네히라도 세타에서 패배해 8백남짓이었던 군세가 50기정도로 되었지만 역시 요시나카가 걱정으로, 교토로 향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사실 로쿠죠가와라에서 싸우다 죽는 것이 무장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키소를 나올 때, 생사를 함께 하겠다던 약속을 잊지못해 너를 만나러 여기까지 와버렸다. 볼썽사나온가?"


"터무니 없네. 나도 같아서 자네를 걱정해 여기까지 도망쳐 왔다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해 주니 기쁘기 그지없네."


 재회를 완수한 두명은 이마이의 깃발을 하늘 높이 휘날립니다. 이에 흩어져 있던 요시나카군이 어느정도 결집해 금세 300기 가량의 군세가 모였습니다. 그들은 이 군세로 돌파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깃발을 보고 가이국의 이치죠 지로우(一条次郎)가 6천의 군사를 이끌고 나타납니다. 20배가 되는 적군의 모습을 보고 키소 요리나카는 소리칩니다.


"지금까지 들은 적은 있어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지금 너희들의 눈앞에 있는 것이 '사마노카미 겐이요노카미 오사히쇼군 미나모토노 요시나카(左馬頭兼伊予守朝日将軍源義仲)'이다! 생명이 아깝지 않은 사람은 나를 죽여 목을 요리토모에게 바쳐라!"


 여기를 어떻게든 돌파해, 다음에 기다리고 있던 토이 지로우 사네히라(土肥次郎実平)의 2,000기를 돌파해 나갈 때, 서서히 군사의 수는 줄어 들어 어느덧 요시나카를 따르는 사람은 불과 5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중에는 아직 토모에 고젠이 남아 있었습니다. 요시나카는 고젠에게 말합니다. 



아와즈를 떠나는 토모에 고젠



"그대는 여자이니, 지금 도망치시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함께라고 맹세한 사이가 아닙니까! 오빠도 남는데, 어째서 여자이니까 저만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됩니까?" 


"그대 남자와 동등한 맹장이나, 세상은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소. 키소는 생명이 아까워 끝까지 여자를 방패로 했다라고 몇 년 지나도 말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좋은 것입니까?"


" 그러면 키소님께 보여드리는 마지막 싸움으로 이름 있는 무장을 혼자 죽이고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이 때, 무사시국의 괴력으로 유명한 온다 하치로우 모로시게(恩田八郎師重)가 30기가 넘는 군사를 인솔해 나타납니다. 토모에 고젠은 돌격해 그의 목을 베고, 달려갔습니다. 


 이윽고, 요시나카를 따라오던 테즈카 타로우(手塚太郎)가 전사하고, 숙부인 테즈카 베츠도우(手塚別当)는 사라져 어느덧 요시나카와 카네히라만이 남게 됩니다. 조용하게 물결치는 비와호를 바라보며 요시나카는 말문을 엽니다.



요시나카에게 간언하는 카네히라



"언제나 입는 갑옷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무겁구나."


"하! 마음 약한 말 하지말게, 갑옷이 무거울 리가 없지 이 카네히라 한 명이 천기를 상대할 수 있지 않나. 아직 화살이 7, 8개 남아 있다네.이곳으로 응전할 테니, 마츠바라(松原)의 그늘 아래서 생을 마감하게."


"우리는 태어나는 것도 함께고 죽는 것도 함께라고 하지 않았나. 키소를 나올때부터 그대와 떨어질 생각은 없었다네. 끝까지 싸워 함께 세상을 떠나자!"


"많은 적에게 둘러싸이고 서로가 헤어지고. 대장이 이름없는 이에게 목을 베어지는 것은 가신의 수치이다. 대장군에 어울리는 죽음을 맞이해 주게."


 결국 카네히라에 설득되어, 요시나카는 혼자 마츠바라로 이동합니다. 거기에, 새로운 군세가 50기가 도착합다. 카네히라는 나머지 화살을 쏘며 응전해, 빠르게 8기를 죽입니다. 


"나야말로 키소 사천왕, 키소님의 젖형제 이마이 시로우 카네히라다!"


 이 말과 그의 기세에 적은 카네히라를 멀리서 포위하고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요시나카는 아와즈 마츠바라로 이동 합니다. 그러나, 한겨울의 황혼 아래에 구덩이가 있는 것을 아지 못해, 그의 말은 그 구정이에 빠져 버립니다. 그는 무심코, 카네히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며 뒤를 바라보나 애석하게도 날아온 화살이 그의 이마에 꼽혀 사망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카네히라가 원한 명예로운 죽음을 맞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키소노 요시나카의 죽음



 미우라의 이시다 지로우(石田次郎)의 하인 두 명이 다가가 그 목을 잘라, 칼의 끝에 찔러 높게 내걸고 외칩니다.'용맹으로 이름높은 키소노 요시나카 죽였다!' 그 소리를 들은 카네히라는 다시 한번 외쳤습니다.


"이제 누군가를 보호하며 싸울 필요가 없다! 너희들은 눈에 새겨두어라! 이것이 바로 일본 제일의 용사의 삶이다!"


 그는 칼을 땅에 꼽고, 말에서 떨어져 그 칼에 꼽혀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타이라 가문 타도의 꿈을 꾸며 키소의 야산을 내달리다, '생사를 함께 하자'던 그들 둘의 죽음은 짧은 키소의 천하를 끝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