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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겐페이 쟁란/역사편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구리카라토우케 전투(4) 시노와라 전투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구리카라토우케 전투(4) 시노와라 전투



주에이 2년(1183년) 6월 1일 타이라 가문이 교토에서 도망가는 원인이 되는 '시노하라 전투'가 있었습니다. 


'타이라 타도'를 목표를 세우고 호쿠리쿠를 제압한 키소 요시나카에 대해, 타이라노 코레모리(平維盛)를 총대장으로 10만의 대군을 인솔해 온 타이라는, 4월 26일의 에츠젠 히우치카성(燧城)을 공략하고, 5월 3일에 카가를 점령하고 엣츄를 눈앞에 두었습니다.  타이라군은 호쿠리쿠에 서투르기 때문에 앞의 에츠젠, 카가 전투에서 타이라 측으로 배신한 에치젠 헤이센지의쵸우리 사이메이(長吏斎明)의 안내로 엣츄 젠지 세이슌(越中前司盛峻)에게 5천의 군사를 붙여 엣츄로 향하게 합니다. 하지만 먼저 도착한 이마이 가네히라(今井兼平)와 전투가 일어나 한아노 전투가 발발해, 키소군이 승리했습니다.(한야노전투) 게다가 구라가타토우케 전투에서 크게 승리해 전황은 완전히 요시나카에게 돌아 왔습니다.(구라가타토우케 전투)


 10만으로 진군했던 타이라군은 이제 나머지 3만 가량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대장인 타이라노 코레모리는 겨우 탈출해 시오산(志雄山)에 있던 군세와 합류해 시노와라, 아타기(篠原,安宅)까지 퇴각합니다. 이 시노와라는 이마에(今江), 키바(木場), 시바야마(柴山) 세 곳에서 나온 물이 만든 삼각지로, 사방이 물인 천혜의 요충지였습니다. 타이라군은 여기서 결사의 각오로 지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지리를 잘 아는 모리 미치아키(林光明)의 안내로 얕은 여울을 건너 단번에 타이라 군에게 돌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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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와라 위치


 지에이 2년(1183년) 6월 1일 오전 키소군의 선봉을 맡는 히구치 지로우 카네미츠(樋口次郎兼光)가 100기 남짓을 인솔해, 타이라 측의 선봉 하타케야마 요시카게(畠山能景)의 300기와 격돌합니다. 계속 되어, 이마이 시로우 카네히라(今井四郎兼平), 오치아이 카네유키(落合兼行), 네노이 코야타(根井小弥太) 등이 차례로 돌입해 갑니다. 맞아 싸우는 타이라 군에서도 후지와라 타다키요(藤原忠清), 타이라노 모리요시(平盛俊) 등이 열심히 방어 합니다. 이윽고, 요시나카, 코레모리의 양군의 대장 스스로도 전투에 참가합니다. 비가 거짓말과 그쳐, 여름의 햇볕이 맑게 내리쬐는 중 사투가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나 타이라군은 요전날 구리카라 토우케(고개)의 대승에 기세가 오른 키소군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름 있는 무장들이 차례차례로 토벌해지거나 패주 해, 전투는 키소측의 압승이 됩니다.


 물론, 끝까지 분전하는 무장도 있었습니다. 신슈 스와의 거주자 테즈카 타로우 미츠모리(手塚太郎光盛)는 전투의 한중간에 한 명의 타이라측 무장과 대치합니다. 이미 싸움에 지치고 상처도 입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 무장은 사무라이 다이죠우(侍大将)가 입는 히레타레(錦の直垂)[각주:1]를 입고, 모에기오도시노 요로이(萌黄縅の鎧)[각주:2]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이에 미츠모리는 '그쪽은 누구십니까?'라며 물어 봅니다. 하지만 그 무장은 '보잘것 없는 이름을 알아서 무엇 하시겠소, 키소님은 아실 것 입니다.'라 대답합니다. 결국 그 무장을 죽인 미츠모리가 목을 확인하자 숨을 삼키게 됩니다. 그가 죽인 것은 요시나카의 생명의 은인 사이토 사네모리(斉藤実盛)였습니다.


 요시나카가 아직 구왕(駒王)으로 불리고 있던 2세 무렵 그의 사촌형제인 요리토모의 형 미나모토노 요시히라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해 그 자신의 생명도 표적이 되었습니다. 요시히라는 '구왕을 찾아내는 대로 죽여라!'하고 명합니다. 이에 하타케야마 시게요시(畠山重能)가 잠시 후 그를 찾아냈지만, 2세의 아기를 죽이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고 친구에게 상담합니다. 그리고 그 시게요시에게 부탁받아, 구왕을 데려 키소의 나카하라 카네토우(中原兼遠)에 맡기러 온 친구가 바로 사이토 사네모리였습니다. 



사이토 사네모리의 분전



 하지만 하나 이상한 것이, 그의 나이는 적어도 70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칼은 짙은 흑빛이었습니다. 요시나카가 고개를 돌려 카네미츠를 바라봅니다. 카네미츠는 통곡하며 말했습니다. 


"사이토 사네모리님이 맞습니다. 사네모리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60을 지난 뒤에 전장에 나갈 때는 머리칼을 먹으로 검게 물들이고 나갈 것이다. 백발을 흩날리며 젊은 아이들과 싸우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고, 혹여나 아기들이 나를 늙은이라 경시할까 두렵구나. 게다가 노인이 되면 몸이 둔해지고 멍청해지는 것도 두렵다.' 사네모리님은 말씀대로 머리를 검게 물들이신 것입니다."


 과연 그 목을 씻겨 보면, 흑발은 순식간에 백발이 되어 바야브로 사이토 시네모리였습니다. 그는 놀라운 활쏨시로 유명한 무장이었지만, 한 곳에 의탁하지 않았기에 높은 직위를 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나이는 70대 마지막 자신의 전장으로 이곳을 택한 그는 처음으로 대장이 입는 히레타레, 모에기오도시노 오도리를 착용했던 것입니다. 요시나카는 눈물을 훔치면서 전장의 가까이에 그를 극진히 매장했습니다. 500여년 후, 이곳을 지나던 나그네, 마츠오 바쇼(松尾芭蕉)는 하이쿠[각주:3]를 남기고 갑니다.



むざんやな 甲の下の きりぎりす

잔혹하구나 투구 밑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1. 갑옷아래 입는 기모노 [본문으로]
  2. 연두빛 실로 철조각을 이어만든 갑옷 [본문으로]
  3. 일본의 싯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