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1)
마에다가의 미래는? 아사이나와테 전투
게이쵸 5년(1600년) 8월 8일, 호쿠리쿠의 세키가하라라 전투인 '카가 아사이나와데 전투'가 있었습니다.
게이쵸4년(1599년), 병으로 쓰러진 마에다 토시이에는, 병상에 부인 마쯔를 부르고, 유언서를 씁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남 토시나가는, 향후 3년간 카가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차남 토시마사는 반대로 가나자와성(金沢城)을 나와서는 안 된다. 오사카와 카가의 양쪽 모두 8,000 씩 군사를 두어 만약 도요토미에 모반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오면, 토시마사는 즉석에서 그 군사를 인솔해 상경해, 토시나가의 군사와 합류해 싸우도록 해라
마에다 토시이에와 히데요시는 어릴적부터 친구였습니다. 그런 히데요시가 작년(게이쵸 3년) 아직 어린 히데요리를 남겨 세상을 떠날 때, 토시이에의 손을 잡아 '제발 히데요리를 지켜주게나'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한 것을 그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만, 토시나가는 이것을 어기고 가나자와로 돌아가 버립니다.
마에다 토시나가 초상화마에다 토시마사 초상화
그러자 이야에스는 재빨리 트집을 잡습니다. '그가 무단으로 히데요리의 보호를 중지한 것은, 문치파와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 이라 하고, '카가 정벌'을 하려 합니다. 이대로는, 모반을 일으켰다고 해서 이에야스에 공격받아 마에다 가문이 멸망 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결국 토시나가의 어머니인 마쯔가 인질로 에도에 가기로 해, 이에야스는 카가에의 출병을 멈춥니다. 이윽고 7월, 이에야스가 비운 후시미성에, 이시다 미쓰나리가 공격을 시작한 후시미성공방전(후시미성 공방전)이 발발하는 것과 동시에, 토시나가도 행동을 일으킵니다.
그 무렵 카가 남부에서 에츠젠에 걸친 호쿠리쿠 일대의 영주들은, 도요토미 측인 오오타니 요시쓰구의 권유를 받아, 대부분의 사람이 서군측에 섰습니다. 이에 토시나가는 자신이 이에야스 측인 일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호쿠리쿠 각지의 도요토미측의 성의 공략에 착수합니다. 8월 3일에는, 야마구치 무네나가(山口宗永)의 카가 다이쇼우지성(大聖寺城)을 공략하고, 그 기세를 타 에츠젠에 진공합니다. 하지만 '적의 대군이 바다로의 공격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어, 일단 가나자와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카가 코마츠성(小松城) 성주 니와 나가시게(丹羽長重)는 그들의 철퇴를 쫓아 아사이나와데에서 8월 8일의 심야, 공경을 시작합니다.
아사이나와데 전투가 일어난 곳
전날부터 내린 비 때문에 총을 사용할 수 없는 토시나가 부대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게다가, 코마츠성에서는 차례차례로 원군이 출진해 옵니다. 그는 여기서 단념했으나, 본대의 고전을 우연히 듣고, 무장등이 원군으로 도착해 어떻게든 버텨 냈습니다. 이윽고,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토시나가는 나가시게와 전투중이었기에 참가는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후에 이야에스는 호쿠리쿠에서 그의 활약을 칭찬해, 에도 막부에서 '카가 백만석'의 다이묘가 됩니다.
사실 세키가하라 전투 때 마에다 가문역시, 모리 가문이나 사나다 가문처럼 멸망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부친이 '가나자와성에서 떨어지지 말아라'라고한 토시마사가 식솔이 오사카성에 있는 것을 핑계로 서군이 됩니다. 전투 당일이야 거성인 나나오성에서 움직이지 않았으나, 결국 도쿠가와의 손에 의해 노토의 영지가 몰수되고 교토에서 은거합니다. 하지만 이 몰수된 영지가 형의 것이 되었기에 마에다 가문의 손실은 실질적으로 '0'입니다. 마에다 가문은 훌륭히 지켜졌습니다만, 히데요리를 지키기를 바랬던 그들의 부친 토시이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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