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 기타편;
다케다 신겐의 시나노 재패의 원동력, 인재활용법
가이의 범,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이 지배하는 가이의 동쪽은 호조의 사가미, 남쪽은 이마가와의 스루가라고 하는 대국들이 있고 서쪽은 거대한 아카이시 산맥이 방해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쪽의 시나노를 다케다의 영지로 하는 것은 아버지 노부토라의 시대부터 오랜 세월의 꿈이었습니다. 당시의 시나노는 슈고 오가사와라 나가토키(小笠原長時)로 후츄(府中)에서 통치하고 있었지만, 그 범위는 분지주변의 치기미, 아즈미와 이나만으로, 그 이외는 현지에 뿌리내린 코쿠진들의 군웅할거인 상황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추방한 신겐은 스와를 점령하고 북시나노를 좌지우지하는 무라카미 요시키요와 힘을 겨루던 신겐은 결국 텐분 22년(1553년)에 요시키요의 본성을 점령해 시나노 전 국토를 거의 평정 합니다.
무라카미 요시키요가 신겐에게 의탁하며 벌어진 가와나카지마 전투는 결국 결착이 붙지 않았지만, 딱히 심각하게 패배를 한적도 없이 시나노에의 영향력을 다졌습니다. 결국 에이로쿠 10년(1567년) 아즈미의 여러 장군이 신겐에 서약문을 바치고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신겐은 시나노 제패의 비원을 달성했습니다. 이 후의 신겐은, 그 오케하자마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잃은 이마가와의 영지 스루가로 진공하게 됩니다. 그 생애에 70 남짓한 전투를 경험한 신겐은 불과 3 회 밖에 패전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중 2회가 바로 무라카미 요시키요와의 전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신겐은 이 이후로 전투에 이르기 전에 충분한 준비와 수많은 책략를 걸어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을 실현하게 됩니다.
다케다의 전성기 영토
신겐이 가장 자랑으로 삼은 것은 인재 활용방법이었습니다. 신겐은 자주 측근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언제 어떤 때라도 대장은 사람을 올바르게 평가해 개성을 알아 적재적소에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또한 결코 편애는 하지 않아야 하고, 공훈을 세운 이에게 격려도 그 대소에 따라 대장 스스로 실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상대의 성격을 볼 때, 잘못알기 쉬운 세가지의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번째는, 판단력이 있는 사람을 독선적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
2번째는 사려 깊은 사람을 겁장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
3번째는 판단력이 적은 이를 무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는 것 입니다.
신겐은 이런 방법으로 인재를 적재적소이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한 가신에 대해 겁장이라는 비판이 심해지자 신겐은 '그는 겁장이가 아니고 신중한 이이다.'라며 옹호하고, 측근을 시켜 그를 감시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감시의 결과는 신겐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또 전시에 성격이 급하고 쉽게 흥분하는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와 지나치게 신중해 결단이 늦은 코우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를 함께 보내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게 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신분이 낮은 고용인에 대해서도 3교대로 일하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떫은 감도 단감과 함께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신겐의 이러한 인재 활용법은 「고요군감」 등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내친김에 신겐의 명언을 몇개 보고 가시죠.
人は城 人は石垣 人は掘 情は味方 讎(あだ)は敵なり
사람은 성, 사람은 돌담, 사람은 참호, 정은 우리 편, 원수는 적이 된다
木に枝葉があるように、人には学問がなけらばいけない。 ただし、学問というのは書物を読むばかりではなく、自分自身の進む道について学ぶ事である。
나무에 가지와 이파리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학문이 없으면 안 된다. 다만, 학문이라는 것은 서적을 읽는 것만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진행되는 길에 대해 배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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