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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인물편/여성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역적의 딸에서 전국의 권력자로, 카스가노쯔보네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역적의 딸에서 전국의 권력자로, 카스가노쯔보네



카스가노쯔보네(春日局)는 사이토 토시미츠(斎藤利三)의 딸로 에도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유모입니다. '카스가노츠보네'는 조정에서 내려진 칭호로, 본명은 사이토 후쿠(斎藤福, さいとう ふく)입니다. 



카스가노쯔보네



아버지 사이토 토시미츠는 주군인 미쓰히데를 따라 함께 혼노지의 변(혼노지의 변)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토벌했으나, 하시바 히데요시와 겨룬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에서 패전해 귀성 후에 붙잡혀 처형되고, 다른 형제는 오치무샤(전란에 패배해 도망다니는 무사)가 되어 각지를 유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었기에, 화를 어느정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외가인 산죠가에 보내졌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서예, 노래, 향(香)도 등의 교양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 뒤에 그녀는 숙부의 양녀가 되고 이나바 마사나리(稲葉正成)처가 됩니다. 이나바 마사나리는 코바야카와군을 설득해 세키가하라전투를 승리로 이끈 무장입니다



 남편 마사나리의 전공과 그녀의 인품과 교양이 인정받어 게이쵸 9년(1604년)에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의 적자  다케치요(竹千代: 후의 이에미츠)의 유모가 됩니다. 그녀는 노부나가를 죽인 역적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늠름하고 당당해 채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다고 하나 다른 설도 있습니다. 이나바 마사니리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셋 낳았지만, 일설에 의하면  남편의 바람기가 있어 애인을 집으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하자 그 애인을 죽이고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그녀의 초상화



그런데 타케치요가 후쿠를 잘 따르자 이에 생모인 고우(江: 아자이 세 자매 중 막내)는 이를 못마땅히 어겨 다케치요의 친동생 쿠니마츠(国松" 후의 타다나가)를 총애하고 쿠니마츠를 쇼군 후계로 세우려 합니다. 이에 다케치요는 불안감을  느껴 자결까지 생각하게 되지요. 이 모습을 본 카스가노쯔보네는 겐나 원년에 이야에스를 방문해 다케치요를 후계로 정해달라고 직소합니다. 이때는 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나, 후에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후의 창작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카스가노츠보네가 이에미츠의 충실한 유모였던 것은 틀림없습니다칸에이 3년(1626년) 스우겐인(崇源院, 에요) 사후에 이에미츠의 측실들을 찾아 입궁시키고, 칸에이 6년(1629년)에는 이에미츠의 치유 기원을 위해  이세신궁(伊勢神宮)에도 참배합니다. 이즈음 종 3위의 위계와 '카스가노츠보네'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이 때 그녀는 당대 고미즈노오천황(後水尾天皇)에게 양위를 요구했는데, 이에 덴노가 신분이 낮은 그녀의 말을 듣고 화가 나 양위를 결의했다고 할 만큼 그녀는 괄괄한 여장부였던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에미츠가 쇼군이 된 뒤에 오오쿠 고하토(大 奥御法度)를 정해, 이른바 남자금제(男子禁制) 등 후세로 계승되는 오오쿠의 기반을 만들어, 권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렇게 이에미츠를 충실히 보좌하던 그녀는 칸에이 20년(1643년)에 향년 64세를 일기로 사망합니다. 그녀의 사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西に入る 月を誘い 法をへて 

서쪽로 들어가는 달을 꾀어 불교의 길을 따라 

今日ぞ火宅を逃れけるかな

오늘이야말로 속세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