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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공성전

일본 전국시대 전쟁편; 전국시대의 공성전은? 일본 전국시대 전쟁편;전국시대의 공성전은? 전국시대의 공성전이라 하면 불타오르는 천수각을 이미지하기가 쉽지만, 이렇게 성을 점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그렇게 점령한 성을 쓰는 것은 다름아닌 공격측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성이 항복하게 하는 것으로, 조략(調略)이나 포위를 통해 병량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성을 완전하게 둘러싼 뒤 다른 성과의 보급로를 끝는 것 뿐만 아니라, 연락도 끊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나가시노성에서는 한 전령에 의해 전황이 완전히 바뀌기도 하였지요. 또한, 성에는 2~3개월분의 식량이 있고 그정도를 버티면 후힐(後詰)이 도착하기 때문에 포위또한 매우까다로왔습니다. 이런 것들을 막기 위해 다케다 신겐은 급수시설을 공격하였고, 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0) 성과 공성전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어땠을까? (10) 성과 공성전 성 성은 고대 일본에서는 '키(き)'라고 불렸습니다. 그 후, '죠(じょ)'라고 불리다가, 전국시대 중반에 '시로(しろ)'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성에는 방어를 위해서 해자(堀), 쯔키지(築地: 흙담), 토루(土塁: 흙 보루), 목책(尺木), 담(塀) 등이 건설되었습니다. 해자는 단순히 흙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둥으로 보강해, 흙을 굳히고 무너지지 않게 했습니다. 해자를 팠을 때에 나오는 흙을 쌓아 올이면 그것을 토루라 부릅니다. 목책은 재목을 우물 정(井)자의 무늬로 짜 올리기 때문에, 사이에 틈새가 생깁니다. 공방 시에 그 틈새로 공격을 하거나 적을 보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 있었습니다. 쯔키지에는 돌이나 욱새를을 혼합한 적토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의 츄코쿠 대귀환 타카마츠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히데요시의 츄코쿠 대귀환타카마츠성 공방전 덴쇼 10년(1582년) 츄고쿠 지방의 공략을 진행시키고 있던 하시바 히데요시가, 빗츄 타카마츠성을 공격했습니다. 천하통일을 눈 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는 덴쇼10년(1582년) 가이의 다케다를 멸망 시켜(다케다가 멸망하다), 드디어 남는 강적은 츄고쿠 지방뿐이었습니다. 츄고쿠 지방의 평정을 맡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덴쇼 8년(1580년)에 하리마, 미츠키성을(미키성 농성전), 다음 9년(1581년)에 돗토리성(돗토리성 점령)을 점령해 드디어 덴쇼 10년(1582년) 빗츄까지 진군합니다. 도중에 비젠 오카야마 성주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直家)가 아군에 되어(2차 코우즈키성 공방전) 사기 충전한 히데요시군은 타카마츠성(高松城)을 목적으로 정해 덴쇼10년..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미미가와 전투(2) 미미가와 전투의 막이 오르다 타카기카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미미가와 전투(2)미미가와 전투의 막이 오르다타카기카와 전투 덴쇼 6년(1578년) 분고의 오오토모 소린과 사츠마의 시마즈 요시히사와의 미미가와 전투의 초전 타카기카와 전투가 있었습니다. 덴쇼 5년(1577년)의 기자키가하라 전투로 인해 사츠마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대패를 당해, 휴우가의 남쪽을 빼앗긴 이토 요시스케(伊東義祐)가 구원을 요청해, 시마즈와의 항전을 결의한 분고의 전국 다이묘 오오토모 소린은 휴우가의 땅 일부 양도를 약속받아, 크리스찬의 이상향 뮤지카를 지으려 했습니다. 이전의 부인과 이혼하고 크리스천인 새부인 쥴리아를 맞이해 본인도 돈 프란시스코로 개명해, 아들에게 다이묘 자리를 주고 출진합니다. 소린은 3만 5천의 군세를 해로로 이끌어 용이하게 후유가로 진출해 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 코우즈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코우즈키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하시바 히데요시가, 아카마쯔 마사노리(赤松政範)의 하리마(播磨) 코우즈키성(上月城)에 쳐들어갔습니다. 요시아키의 편지로 인해 노부나가 포위망이 생기고, 노부나가가 그것을 하나하나 파괴해 나가고 있는 도중, 노부나가는 본거지로 하고 있던 기후성과 미노, 오와리를 장남 노부타다에게 맡긴 뒤 덴쇼 4년(1576년) 초부터 아즈치성(安土城)의 축성에 착수합니다. 이즈음 노부나가는 6년전의 겐키 원년(1570년)에서부터 계속된 혼간지와의 이시야마 전투(1차 이시야마전투의 발발), 텐노지 전투(텐노지 전투)에 이어, 제1차 키즈가와구 해전(키즈가와구 해전)에다가 우에스기 겐신까지 혼간지와 갈등을 끊고, 참전을 표명해 나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