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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하자마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한번의 전투로 멸망, 이마가와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한번의 전투로 멸망, 이마가와 가문 전국시대에 일어나고 몰락한 수많은 가문 중에서 이마가와 가문 만큼이나 한 번의 대패로 몰락한 가문이 또 있을까요? 보통 이마가와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의 발판(...)으로 등장하나 사실 요시모토는 엄청나게 유능한 다이묘였고, 그의 아들인 우지자네는 평벙한 다이묘였습니다. 다만 상대가 노부나가였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이마가와 가문의 성립 스루가의 센고쿠 다이묘였던 이마가와 가문의 조상은 다름아닌 아시카가 가문입니다. 아시카가 가문이 분가해 이마가와의 마을들을 다스리면서 '이마가와'라 자칭하게 된 것입니다. 호조가문과 덴노의 권력 투쟁인 '나카센다이의 난'에서 아시카가 측에선 이마가와 가문은 스루가, 도토미의 수호직을 제수받게 됩니다. 이 뒤로 이마가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영주편; 멍청한 것인가 시대를 잘못만난 것인가, 이마가와 우지자네 일본 전국시대 영주편;멍청한 것인가 시대를 잘못만난 것인가, 이마가와 우지자네 덴쇼 3년(1575년),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氏真)가 상경해 교토 쇼코쿠지(相国寺)에서 부친의 원수, 오다 노부나가와 대면했습니다. 동해도 제일궁이라 불리며 천하를 노리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당시 일개 시골 무장이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칼에 오케하자마(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은 것은 바로 이마가와 우지자네입니다. 보통 우지자네는 아버지만 못해 나라를 망친 리더로 묘사됩니다. 그러면 정말로 우지자네는 무능했을까요? 다케가의「고요군감」은 신겐을 빨아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서는 우지자네를 비판하지만, '마음은 매우 강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시 상황상 훌륭한 리더였던 요시모토의 급작스런 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 전투(3) 도쿠카와 이야에스는 어디 있었나? 오케하자마 전투로 당시 천하에 제일 가까웠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어이없이 전사해 한 때의 양아치였던 오다 노부나가가 단번에 전국시대의 무대 전면에 뛰어 오릅니다. 그리고 이 오케하자마의 전투에서 마츠다이라 모토야스, 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3년간의 인질 생활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겐신등이 그랬듯이 알기 쉽게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를 그냥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오다카성, 나루미성은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었습니다. 한때는 오다가의 성들이었지만 나루미 성주 야마구치 노리쯔구(山口教継)는 자신 성 뿐만아니라 오다카성도 점령해 아마가와가에 투항합니다. 이 성들을 되찾기 위해 츠케시로를 지은 오다측에 요시모토의 선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 전투(2) 오다 노부나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취하다 엔로쿠 3년(1560년) 전국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중 하나인 오케하자마 전투가 있었습니다. 저번에 보았듯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2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오다가와의 국경선으로 도착합니다. 이런 가운데 구쓰카케에서 서쪽으로 이동 중이었던 요시모토 본대에게 희소식이 들려옵니다. 오다측이 설치하고 있던 츠케시로 와시즈를 중신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가 눈 깜짝할 순간에 점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군의 승리에 기분의 좋아진 요시모토는 근처의 오케하자마에 진을 쳐 군세를 쉬게 합니다. 한편, 와시즈가 점령된 일을 알게 된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은 야단 법석이 납니다. 게다가 요시모토군은 허세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케하자마의 전투(1)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출격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오케하자마의 전투(1)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출격 에이로쿠 3년(1560년)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군에 출진 명령을 내렸습니다. 스루가의 전국 다이묘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에이로쿠 3년(1560년)에 출진 명령을 내려 슨푸를 카케가와성, 인마성, 요시다성, 오카자키성, 치리우성과 벌써 이마가와가의 산하에 있던 도토우미에서 미카와의 성으로 이동해, 오와리의 국경을 넘고, 콘도우 카게하루(近藤景春)의 구쓰카케성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앞에는 이마가와가의 최전선 나루미성과 오다카성 한층 더 앞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키요스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요시모토의 출진은 상경이 목적이지, 노부나가와의 마찰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상경이 목적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설 쪽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이마가와의 철의 여인, 쥬케이니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이마가와의 철의 여인, 쥬케이니 쥬케이니(寿桂尼) 나카미카도 노부타네(中御門宣胤)의 딸로, 이마가와 우지치카(今川氏親)의 정실입니다. 자식으로 이마가와 우지테루(今川氏輝),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氏親), 즈이케이인(瑞渓院)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장남인 우지테루가 죽은 뒤에 삭발을 하고 법명을 받아 쥬케이니라고 하였다. 우지치카 , 우지테루, 요시모토, 우지자네(今川氏真, )의 4대를 거치면서 이마가와 가문의 정무를 보좌한 이마가와의 철의 여인입니다. 에이쇼 2년(1505년) 우지치카에게 시집을 와, 에이쇼 8년(1513년)에는 장남 우지테루, 차남 히코고로(彦五郎)를 낳고 에이쇼 14년(1519년)에는 요시모토를 낳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인 우지치카는 병에 걸려 드러 눕게 되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