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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치 미쓰히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혼노지의 변의 서막, 노부나가의 사카이 마을 공격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혼노지의 변의 서막, 노부나가의 사카이 마을 공격 에이로쿠 12년(1569년) 오다 노부나가가 군자금을 요구해, 저항한 미요시 삼인중을 쫓아버리고 사카이(堺)의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받들고 상경을 완수한 오다 노부나가의 군세는 신사적인 태도로 꽤 평판이 좋고 상경 후 1개월에 교토를 거의 지배합니다. 교토에서 노부나가의 눈을 끈 것이 활기찬 사카이 마을이었습니다. 사카이는 당시 '네코쥬(会合衆)'라는 상인들의 대표자에 의한 자치로 운영되고 있는 독립국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심지어 총의 제조도 독점 했기 때문에 이렇게 경제발전을 계속하는 사카이 마을을 지배하면 방대한 세를 징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에이로쿠 11년(1568년) 사카이에 군자금 2만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아시카가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일본 전국시대; 아시카가 요시아키, 코호쿠지를 탈출하다 에이로쿠8년(1565년) 나라의 코후쿠지에 유폐 되고 있던 가쿠게이(覚慶)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등의 안내로 오미로 탈출했습니다. 이 가쿠게이라고 하는 스님은 누구일까요? 어릴 적에 나라의 코후쿠지에 들어가 29세까지 불문 외곬의 길을 걸을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무로마치 막부 제 12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 형은 제13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바로 무로마치 막부 15 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입니다. 요시테루를 살해한 히사히데와 미요시 삼인중은 차기 쇼군에 요시테루의 아버지 요시하루의 남동생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데를 옹립하려합니다. 원래 아시카가 막부는 대대로 쇼군직을 이어야 할 적자 이외는 절에 들어가 승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8) 미쓰히데 생존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8)미쓰히데 생존설 혼노지의 변은 단 하루의 사건이지만 전국시대는 이 사건에 이전과 이후로 바뀌는 데다 의문점이 상당히 많은 사건이지요. 이 사건을 일으킨 미쓰히데는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에서 히데요시에게 패배해 도망치다 마을사람들의 '무사사냥'에 의해 죽창에 찔려 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죽지 않은 것은 아닌가? 라는 '아케치 미쓰히데 생존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이 생존설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에도 초기의 승려로, 막부의 종교 행사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타다, 이에미쓰의 삼대에 걸쳐서 시중들었던 덴카이 소조(天海僧正)가 아케치 미쓰히데라는 설입니다. 다른 설은, 오구리스(小栗..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아케치 미쓰히데를 내조한, 쯔마키 히로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아케치 미쓰히데를 내조한, 쯔마키 히로코 쯔마키 히로코(明智熙子)는 쯔마키 히로타다(妻木広忠)의 딸로, 아케치 미쓰히데의 두 번째 아내입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모로 유명했으나 결혼 전에 천연두에 걸려 얼굴이 곰보자국이 남게 됩니다. 이에 그녀는 결혼을 단념하려 하고 자신과 닮은 여동생을 미쓰히데에게 보내나, 미쓰히데는 이를 간파하고 그녀에게 당신의 얼굴이 아닌 마음을 보았다고 하며 결혼을 요청합니다. 사실 이런 일화는 타카하시 쇼운이나 킷카와 모토하루에게도 있어 실제가 아니고 그냥 인물의 인품을 나타내는 만들어진 일화 정도였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얼마후 아케치성(明智城)은 적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어, 미쓰히데는 료닌(浪人: 방황무사)이 되고맙니다. 그러자 히로코는 궁핍해진 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신앙을 끝까지 관철한 여인, 호소카와 가라샤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신앙을 끝까지 관철한 여인, 호소카와 가라샤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는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딸로, 호소카와 타다오키(細川忠興)의 정실입니다. 그녀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삼녀로 덴쇼 6년(1578년)에 오다 노부나가의 권유로 호소카와 타다오키에게 시집가게 됩니다. 남편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혼노지의 변이후 어쩔 수 없이 역적의 딸인 그녀를 탄고의 미토노(味土野)에 유폐하게 됩니다. 이때 그녀를 지지해 준 것은 시녀들과 키요하라 마리아(清原マリア)였습니다. 덴쇼 12년(1584년) 히데요시가 용서해 그녀는 다시 호소카와가로 돌아옵니다. 그전까지 그녀는 불교를 믿었지만, 남편이 다도를 배운 '센노리큐(千利休)'의 동문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이 자주 놀러와 타다오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2) 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일본 전국시대;야마자키 전투(2)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덴쇼 10년(1582년) 천하의 판세를 두고 덴노산에서 야마자키 전투가 발발합니다. 혼노지의 변에서 어느덧 11일째, 아케치 미쓰히데를 보통 '삼일 천하'라고 말하지만 이런 표현이 으례 그렇듯이 딱 삼 일만 천하를 거머쥐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눈물을 흘리며 주군의 복수를 부르짖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밑으로 오다의 세력들이 쏙 쏙 흡수됩니다. 한편의 미츠히데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키운 츠츠이 준케이도 오지 않고('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의지하고 있던 딸 가라샤의 남편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도 참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12일에 호라가토게에서 출진한 미쓰히데는, 직속 부하 1만 6천의 군사를 이끌고 히데요시군 4만과 맞서 싸우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1) 츠츠키 준케이, '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일본 전국시대;야마자키 전투(1) 츠츠키 준케이, '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에 일어난 혼노지의 변으로 인해 여러 무장들은 각자 행동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가코에(이가코에)를, 하시바 히데요시는 츄고쿠대귀환(츄코쿠 대귀환 )을 했습니다. 6월 10일 히데요시는 정오에 아마가사키(尼崎)에 도착해, 그곳의 무장들에게 자신의 아군이 되도록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히데요시의 요청에 따라 아리오카성(有岡城) 성주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 이바라키성(茨木城) 성주 나카가와 키요히데(中川清秀), 타카츠키성(高槻城)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이라고 하는 무장들이, 즉석에서 히데요시 측의 참전을 표명합니다. 당연히 아케치 미쓰히데는 상당한 충격을 받습니다. 셋츠중이라 불리는 그들은 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7); 노부나가의 시체는 어디있는가?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7); 노부나가의 시체는 어디있는가?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는 혼간지의 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가슴에 총탄을 맞았으므로 할복 자살했다고 하는 사람도, 저택에 불을 질러 불에 타 숨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화재가 컸기 때문에, 노부나가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오제 호안(小瀬甫庵)의 「노부나가기信長記」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을 찾았지만 전혀 발견되지 않고, 미쓰히데가 많이 수상하게 여겼지만, 유해 같은 것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또, 「대자원구기록大慈院旧記」에는, 이세의 호시아이성(星合城) 주 호시아이 노리후사(星合教房)의 아내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아내가 교토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히노 언덕(日ノ岡)에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5)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미쓰히데 결백설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5)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미쓰히데 결백설 혼노지의 변은 단 하루의 사건이지만 전국시대는 이 사건에 이전과 이후로 바뀌는 데다 의문점이 상당히 많은 사건이지요. 오다 노부나가는 사실 죽지 않았다는 설부터 이야에스가 진범이라는 설, 히데요시가 진범이라는 설도 있는데, 오늘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범인이 아닌게 아닌가? 하는 설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혼노지의 변에서 나온 속담「적은 혼노지에 있다敵は本能寺にあり」라는 말은 에도시대에 쓰여진 「카와스미 다이코키川角太閤記」가 최초로 정작 혼노지의 변에는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번의 마쓰히데 군의 진정한 목적이 노부나가 토벌인 것도 아케치 미쓰히데의 매우 일부의 중신만이 알고 있었다고 하나, 정말인지는 모르지요. 즉, 아케치 미쓰히데 .. 더보기
혼노지의 변(3) 범인은 누구인가? 이야에스 흑막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3) 범인은 누구인가? 이야에스 흑막설 덴쇼 10년 6월 2일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할복하고 맙니다. 반노부나가 포위망을 찟고, 전국 통일을 눈 앞에 둔 노부나가는 서쪽의 모리를 토벌하기 위해 수도로 돌아가, 6월 4일 출진을 예정하고 선봉으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저번에 썼듯이,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고 맙니다. 혼노지의 변이 왜 일어났는가?(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그리고 그 경과(전국시대의 풍운아, 혼노지에서)에 대해서 썼다면 오늘은 흑막설에 집중해 범인을 찾아 보겠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5월 30일, 교토에서 사카이로 이동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카이의 항구를 유람 하는 등 사카이 관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반달전 이야에스는 아즈치성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