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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츄고쿠의 패자, 모리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츄고쿠의 패자, 모리 가문 일본 전국시대 최고의 다이묘를 손꼽자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모리 모토나리입니다. 지략과 모략으로 일개 토호에서 시작해 츄고쿠를 재패하는 대 다이묘가 된 모리 가문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모리 가문의 성립 모리 가문은 계도에 따르면 아메노호히노미코토(天穂日命)를 선조로 삼고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냥 다이묘들이 자신의 가계를 신성화 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실제로는 오오에(大江)가문이 선조인듯 합니다. 그 자손들 중 사가미의 모리장(毛利庄)을 영유하며, 토지의 이름을 따서 '모리' 를 자칭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가문들에게 밀려 츄고쿠 아키국의 요시다장의 지도우(地頭)가 되어, 여기서 츄고쿠에서의 모리 가문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모리 가문의 중..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츠네야마성, 여성들이 죽창을 들고 분전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츠네야마성, 여성들이 죽창을 들고 분전하다 덴쇼 3년(1575년), 모리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우에노 다카노리(上野隆徳)가 지키는 비젠 츠네야마 성(備前常山城)를 점령했습니다. 반 오부나가 포위망에도 굴하지 않고 세를 불리는 노부나가는 계속해서 하나 하나 세력을 억제하고 있었습니다. 아자이와 아사쿠라는 멸망하고 그 두개골이 술잔이 되고 말았지요. 노부나가의 세력이 서쪽으로 향할 때, 지금까지 전국 다이묘 모리의 지배를 받아 온 여러 무장들은 도대체 어느 쪽으로 붙을 지가, 당시 관서의 세력들의 가장 큰 관심아 였습니다. 이즈음에, 하리마의 소영주 코데라(小寺)가의 가신이었던 쿠로다 죠수이(黒田如水)가, 주군 코데라 마사모토(小寺政職)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다의 신하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모토나리, 아마고가의 방어선을 뚫다; 하쿠로쿠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모토나리, 아마고가의 방어선을 뚫다; 하쿠로쿠성 공방전 에이로쿠6년(1563년) 모리 모토나리가, 깃카와 모토하루,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와 함께, 아마고가의 이즈모(出雲) 하쿠로쿠성(白鹿城)에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이와미 은광을 탈취한 모토나리는(이와미 은광 쟁탈전) 드디어, 아마고가의 이츠모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엔로쿠5년(1562년) 차남 깃카와 모토하루,삼남 고바야카 다카카게와 함께 총원 1만 5,000의 군사를 인솔한 모토나리는 이와미를 경유해 이즈모로 들어옵니다. 이 행동만으로 많은 이즈모의 쿠니진들이 시원스럽레 아마고를 단념해 모리의 산하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아라와이(洗合)에 도착한 모토나리는 츠케시로을 구축합니다. 동시에 아마고의 본거지 갓산토다성을 견제하기 위해, 거기에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모토나리와 오오토모 소린의 대결, 모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모토나리와 오오토모 소린의 대결, 모지성 공방전 에이로쿠4년(1561년) 모리 모토나리가 오오토모 소린의 공격을 받고 있던 모지성을 구원하기 위해 아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를 파견했습니다. 전국 3대 기습전의 하나라고 하는 이쓰쿠시마 전투로 스에 하루카타를 넘어뜨려 젊은 당주 오오우치 요시나가를 할복시키고, 츄고쿠 지방의 명문 오오우치씨를 멸망시킨 아키의 전국 다이묘 모리 모토나리는 이제 시선을 아키 밖으로 돌립니다. 오오우치가와 패권을 다투고 있던, 아마고가도 이때 약체화하기 시작합니다.(아마고의 몰락) 그런 가운데 큐슈의 입구 모지에 있는 모지성은 무로마치 시대부터 오오우치가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오우치가가 멸망 해(오오우치 멸망), 오오토모 소린이 맡을 뻔한 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쓰쿠시마 전투(5) 모리군의 추격과 다카카게의 분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쓰쿠시마 전투(5) 모리군의 추격과 다카카게의 분전 코우지 원년(1555년) 이쓰쿠시마 전투로, 스에 하루카타의 맹장 히로나카 타카카게가 전사 했습니다. 주군이 할복하고 군세가 이지러지는 상황에서 저항을 계속하고 있던 것이, 하루카타의 용장 히로나카 타카카게였습니다. 타카카게가는 키요카즈 겐지의 유파를 이어받는 명가였고, 단노우라 전투로 헤이케가 멸망한 뒤에 대대로 이와쿠니의 영주를 맡아 오오우치가의 가신들 중에서도 중심적 존재의 가계였습니다. 오오우치가의 제30대 당주 오오우치 요시오키와 그 아들 요시타카의 2대를 시중들고 있던 타카카게는 오오우치가의 신하가 된 모리가를 구하기 위한 안쇼우성 전투에서도 대활약했으며 오오우치가의 라이벌인 아마고가와의 일련의 항쟁에서는 모토나리와 함..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4) 이쓰쿠시마 급습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4) 이쓰쿠시마 급습 코우지 원년(1555년) 모리 모토나리가 스오우의 오오우치가의 실권을 잡고있던 스에 하루카타를 넘어뜨린 이쓰쿠시마 전투가 있었습니다. 모토나리가 탄 배와 그의 군세는 충분히 서로간의 거리를 벌린채, 운명의 항해를 개시합니다. 선두의 배가, 호우포에 도착할 무렵에는 조금 바람도 잠잠해져 무사히 상륙을 끝냈을 때, 모토나리는 코다마 나리카타에게 모든 배를 가지고 돌아가도록 명합니다.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것이지요. 모토나리를 빼낼 배라도 남겨 놓자고 진언이 나왔지만, 모토나리의 결의는 단단했습니다. 한편 2 부대는 쿠마가이 노부나오(熊谷信直), 노미 무네카츠(乃美宗勝)를 선두로 세워, 예정 대로 크게 우회 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3) 누구의 원군인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3) 누구의 원군인가? 코우지 원년(1555년) 이쓰쿠시마의 싸움을 구원하려는 모리군과 무라카미의 수군 2백척이 아키 하츠카이치바다에 나타났습니다. 원군의 소식이 없는 것에 초조해진 모토나리는 삼남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를 통해 마지막 원군 재촉을 하나, 다음날이 되어도 그들이 나타나는 기색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하루카타에게 붙을 가능성마저 있었습니다. 이대로 미야오성이 점령당하면 꾀어낸 작전도 휴지쪼가리가 되고 단지 이쓰쿠시마가 제압되어 해안가의 성들이 모두 넘어가는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게다가 육지에서는 군사에서 이길 수 있을 전망은 적기 때문에 모토나리는 답이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원군..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2) 미야오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스에 하루카타와 모리 모토나리의 대결; 이쓰쿠시마 전투(2) 미야오 공방전 코우지 원년(1555년)스에 하루카타가 대군을 인솔해 이와쿠니로부터 이쓰쿠시마에 건너, 언덕에 본진을 두고 모리측의 미야오성을 공격했습니다. 2만의 군세를 인솔하고 거점을 출발한 하루타다는 이와쿠니의 에이코우지(永興寺)에 여러 장군을 모으고 이번 모리 공격에 대해 군의를 엽니다. 용장 히로나카 타카카네(弘中隆兼) 등 몇명의 무장은 육로를 선택할 것을 진언합니다. '아마 이번 미야오성은 육상의 야전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원취의 고육지책이니 이쓰쿠시마를 고집하는 것은 그만둬야합니다.' 즉, 모토나리의 작전을 간파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타다는 '세토내해의 해상권을 잡으면, 해안 가의 모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를 이끈 사상과 신앙 (1)무장들의 군신신앙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전투를 이끈 사상과 신앙(1)무장들의 군신신앙 이세 모리토키(伊勢盛時)의 가훈 「조운사전입한개조(早雲寺殿廿一箇条)」의 제 일조는 '제 일, 불신을 믿어 따를 것'입니다. 이세 모리토키는 신들을 대단히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모리토키는 이즈 미시마다이묘진(三島大明神)에 일정 기간 머물며 기도한 뒤에 정월에 큰 2 개의 삼(杉)을 한마리의 쥐가 먹고, 범으로 변화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이 태어난 야마노우치 우에스기(山内上杉)가 오우기가야쯔 우에스기(扇内上杉)가를 멸망시킬 것을 예견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이세 모리토키가 바로, 호조 소운입니다. 모리가의 군기에는 「頂礼正八幡大菩薩 南無九万八千軍神 二千八百四天童子十 帰命摩利支尊天王」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모리의 대군을 눈앞에 두고 당당했던, 츠루히메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모리의 대군을 눈앞에 두고 당당했던, 츠루히메 츠루히메(鶴姫)는 우에노성 성주 우에노 타카노리(上野高 徳)의 정실입니다. 덴쇼 3년(1575년), 모리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우에노 다카노리(上野隆徳)가 지키는 비젠 츠네야마 성(備前常山城)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우에노 다카노리의 주군인 미무라 모토치카(三村元親)는 오다 노부나가의 꾀임에 넘어가 모리가를 배반했지요. 이에 모리의 대군이 모토치카를 넘어뜨리고, 이번에는 다카노리를 향해 갑니다. 마츠야마성이 점령될 무렵에는 이미 츠네야마성도 풍전 등화의 상태였습니다. 마츠야마성 점령 한 달 후에 대군에 포위되어 패배를 직감한 우에노 다카노리는 일족을 모아 마지막 주연을 열고, 일동에게 할복의 의지를 고했습니다. 그러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