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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나카 한베에

일본 전국시대; 명참모 다케나카 한베에의 이나바야마성 점거 일본 전국시대;명참모 다케나카 한베에의 이나바야마성 점거 에이로쿠7년(1564년) 다케나카 한베에 시게하루 (竹中半兵衛重治)가 주군 사이토 타츠오키(斉藤龍興)의 이나바야마성을 빼앗았습니다. 다케나카 한베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밑에서 일한 천재 참모로 일본의 참모를 꼽자면 반드시 첫 번째나 두 번째에 그 이름을 올릴 정도의 인물입니다. 그런 그의 아버지 다케나카 시게모토(竹中重元)는 사이토 도산 때부터 사이토가를 섬기는 미노 이와테성(岩手城)의 성주였습니다. 다케나가 시게하루는 소년무렵 무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학구파로 점잖고 과묵했으며 조용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하루종일 집안에서 책을 읽는 것에 전념해 상대가 무엇을 말해도 별로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세세한 일에도 구애되지 않고 분노를 겉으로..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히데요시 포위망을 펼치다, 미키성 농성전 일본 전국시대;히데요시 포위망을 펼치다, 미키성 농성전 덴쇼 6년(1578년) 하시바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에 반기를 든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의 거성 미키성(三木城)을 포위했습니다. 덴쇼의 초 무렵에 오다 노부나가는 하시바 히데요시를 대장으로 하는 토벌군을 편성해 산요, 산인지방을 평정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차츰 하리마의 여러 영주들은 오다 측으로 붙게 되었지요. 덴쇼 3년(1575년)에는 벳쇼 나가하루 도 노부나가에게 직접 찾아가 오다 측으로 가담할 것을 신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덴쇼 6년(1578년) 초에 나가하루는 돌연 오다측에 일방적으로 지지철회를 선언해, 거성 미키성에서 농성합니다. 그 이유는, '노부나가의 잘난척을 견딜 수 없었다', '히데요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는 여러가지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 코우즈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하시바 히데요시, 코우즈키성을 점령하다코우즈키성 공방전 덴쇼 5년(1577년), 하시바 히데요시가, 아카마쯔 마사노리(赤松政範)의 하리마(播磨) 코우즈키성(上月城)에 쳐들어갔습니다. 요시아키의 편지로 인해 노부나가 포위망이 생기고, 노부나가가 그것을 하나하나 파괴해 나가고 있는 도중, 노부나가는 본거지로 하고 있던 기후성과 미노, 오와리를 장남 노부타다에게 맡긴 뒤 덴쇼 4년(1576년) 초부터 아즈치성(安土城)의 축성에 착수합니다. 이즈음 노부나가는 6년전의 겐키 원년(1570년)에서부터 계속된 혼간지와의 이시야마 전투(1차 이시야마전투의 발발), 텐노지 전투(텐노지 전투)에 이어, 제1차 키즈가와구 해전(키즈가와구 해전)에다가 우에스기 겐신까지 혼간지와 갈등을 끊고, 참전을 표명해 나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