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리스 역사

300, 스파르타인들의 일생(2) 여성편 역사책 거꾸로 읽기(3)300, 스파르타인들의 일생(2) 여성편 저번 포스팅에서는 스파르타인들의 남성 위주로 일생을 보여 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스파르타의 여성들에 대해서 알아 보고자 합니다. 청소년기 여자아이들은 강인한 전사를 낳아야 했기에 16세가 되었을 때, 2차성징이 활발하지 않으면 절벽에 떨어 뜨려 죽였습니다. 살아남은 강인한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 만큼 엄격하지는 않지만 유사시의 대비를 위해 그에 준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물론 벌거벗고 훈련을 받곤 했습니다. 성인기 여자아이들이 장성하면, 국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대부분 군대에 매여있었기에, 사회활동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해야했고. 여성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던 다른 그리스의 폴리스들과 비교할 때, 매우 여성의 지위.. 더보기
300, 스파르타인들의 일생 (1)스파르타의 남자들 300, 스파르타인들의 일생(1)스파르타의 남자들 스파르타! 함성 소리와 함께 옥쇄의 각오로 싸우는 근육질의 용사들, 300에서 나오는 스파르타인들의 모습은 아고게(Agoge)라는 교육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노예가 스파르타인의 20배나 되었기 되었기 때문에, 스파르타인들은 반드시 강인한 용사여야 했지요. 출생 사내아이나 여자아이가 태어난 다면, 다섯명의 검사관들이 '레세'에서 꼼꼼히 검사를 하였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골격에 이상이 있거나, 지나치게 작은 미숙아라면 망설임 없이 그들을 타이게투스산 절벽에 떨어뜨려 죽였습니다. 여자아이들은 강인한 전사를 낳아야 했기에 16세가 되었을 때, 2차성징이 활발하지 않으면 절벽에 떨어 뜨려 죽였습니다. 유아기 7살까지 집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아.. 더보기
게이로 이루어진 무적의 부대 히에로스 로코스 게이로 이루어진 무적의 부대 히에로스 로코스 고대그리스의 테베에 있던 호플리테스 부대입니다. ‘히에로스 로코스’라는 의미는 ‘신성부대’라는 의미이지요. 이 부대는 레욱투라 전투에서 스파르타 정예부대를 무찌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가 따로 포스팅을 올리지 않았겠지요. 이 부대의 가장 큰 특징은 부대원 300명이 150쌍의 동성애 커플이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그리스의 호플리테스들은 그 특유의 밀집대형 때문에 동성애를 권장했다는 소문이 있는데요, 이 부대 때문에 그런 설들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바로 옆에 연인이 있다면, 연인을 보호하고 연인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더 열심히 싸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뤄진 이 부대는 매우 높은 효율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전문 병사로서 일상 .. 더보기
고대 그리스를 지배한 보병 호플리테스 고대 그리스를 지배한 보병 호플리테스 고대 그리스를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강성한 부대에서 구원해 준 것은 바로 이 그리스의 호플리테스 덕이었습니다. 그들이 착용하고 다녔던 커다랗고 둥근 방패인 호플른에서 유래한 명칭이지요. 재밌는 점은 호플른을 비롯해 갑옷, 투구 그리고 창이나 칼에 이르기 까지 본인이 직접 구매하여야 했기 때문에 중상류층 정도는 되야 호플리테스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두 제 각각이었지요. 아테네를 비롯한 도시국가들은 의무 복무제였기 때문에 모든 시민은 군사훈련을 받았고, 전쟁이 일어날 경우 병사로서 군대에 참전하였지요. 따라서 가난한 농민들은 별로 좋지 않은 장비를 가지고 전쟁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이들은 27kg정도 되는 흉갑과 투구, 정강이받이를 착용했으며 무기로.. 더보기
누가 그리스를 지배할 것인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누가 그리스를 지배할 것인가?펠로폰네소스 전쟁 대막을 내린 아이코스포타미 전투 한 하늘아래 해가 두 개가 뜰 수는 없는 법, 두 국가는 외교전을 벌이며 총성 없는 아니 화살 소리 하나 없는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다 곧 재전을 벌이게 됩니다. 아테네의 장수 알키비아데스가 먼저 스파르타를 공격하나, 오히려 전투에서 지고 도편 추방을 당할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들과 교묘히 협상하여 그 위기를 극복해 냈지요. 그리고 얼마 뒤, 올림픽 제전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 명성을 되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설득해 200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스파르타의 동맹국을 공격하러 나서지요. 하지만 아테네에 남아있는 그의 반대파들은 그의 행보가 불만이었습니다. 그가 함대와 함께 원정을 떠나자마자, 그의 세력을 제거하.. 더보기
누가 그리스를 지배할 것인가? 필로폰네소스 전쟁 누가 그리스를 지배할 것인가? 필로폰네소스 전쟁 아테네 제국과 스파르타의 갈등 페르시아와 아테네 및 그리스 폴리스들의 치열한 전투 후에, 페르시아는 완전히 퇴각한 것이 아니라, 부대를 남겨 뒀지요. 이에 위협을 느낀 소아시아와 에게 해의 폴리스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는 이런 아테네를 학문과 예술의 중심부로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르테논 신전이 이때 지어졌고요, 페르시아와 평화협정을 맺기 까지 했습니다. 그 뒤에 델로스 기금을 아테네로 옮긴 뒤, 아테네는 다른 동맹국에게 동맹기금을 요구하는 ‘아테네 제국’이 되어 갔고 그에 따라 다른 도시국가들은 서서히 불만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갈등은 억누르고, 억눌렸지만, 결국 한 사건으로 인해 터지고 말았습니.. 더보기
페르시아 왕조사;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 전투 페르시아 왕조사;마라톤의 기원,마라톤 전투 그로부터 2년 뒤 화를 삭히던 다리우스 1세는 다시 한번 그리스로 진군합니다. 아테네에서 폭정으로 쫒겨난 히파이스의 안내로 페르시아 군은 마라톤 평원까지 별 방해를 받지 않고 진군에 성공합니다. 아테네는 위협을 느끼고 군사강국 스파르타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스파르타는 아폴론 제사기간에 보름달 뜨기전의 전투를 터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원을 보내지 못합니다. 아테네는 오직 8,000여명의 군사로 페르시아의 25,000여명의 군대와 맞딱드립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테네의 밀티아테스 장군은 공격태세를 취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의 군사배치는 보통 중앙에 주력부대를 배치하고, 날개에는 약한 부대를 배치한 뒤 돌파하는 형태였는데, 밀티아테스 장군은 반대로 날개에 주력.. 더보기
페르시아 왕조사; 300의 모티브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 페르시아 왕조사;300의 모티브 테르모필라이 전투, 살라미스 해전 다리우스 1세는 패배의 쓴맛을 맛보고 복수를 준비했으나, 그 전에 죽고맙니다. 그리고 그 아들인 크세르크세스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정복을 이어가지요. 그리고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향합니다. 그러나 군대의 규모가 너무 컸기에 진군속도는 필연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었지요.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아무도 기록을 남기고 있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육상 부대(보병)70만, 기병은 낙타와 전차를 제외하고도 8만, 대함선 170척, 소형 함선과 수송선이 3000척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틈에 아테네는 도시국가들을 연합시켜 동맹군을 조직합니다. 총사령관은 군사강국인 스파르타가, 참모는 아테네의 데미스토클레스가 담당하였죠. 그리고 스파르타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