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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무의 신정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닛타 요시사다의 덴노군, 교토 탈환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닛타 요시사다의 덴노군, 교토 탈환 엔겐 원년, 겐무 3년(1336년) 1월 27일, 미이데라(三井寺)에 주둔하고 있던 아시카가 다카우지군을 닛타 요시사다가 이끄는 고다이고덴노군이 공격해 덴노군이 교토를 탈환했습니다. 제96대 고다이고덴노가 아시카가 다카우지, 닛타 요시사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등의 아군을 얻어 가마쿠라 막부를 넘어뜨려 시작된 겐무의 신정(겐무의 신정) 그러나 공적이 있던 무사 들을 등한시해 문신을 우선한 개혁은 무사들의 큰 불만을 야기했습니다. 이에 아시카가 타카우지는 나카센다이의 난을 토벌한 뒤에(나카센다이의 난) 가마쿠라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닛타 요시사다는 고다이고덴노의 군세를 이끌고 아시카가 타카우지 토벌에 나섭니다.(닛타 요시사다 출진) 하지만 ..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모리요시 친왕, 암살당하다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모리요시 친왕, 암살당하다 겐무2년(1335년) 7월 23일, 가마쿠라에 유폐중이던 모리요시 친왕을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남동생 나오요시(直義)가 암살했습니다. 오오토우노미야 모리요시 친왕(大搭宮護良親王)은 겐무의 신정의 제 96대 고다이덴노의 황태자입니다. 처음은 히에이잔렌라쿠지에서 승려가 되어 출가한 뒤 소운법 친왕(尊雲法親王)이라 자칭하고 텐다이자스(天台座主)가 되어 있었습니다만, 아버지 고다이고덴노가 타도 가마쿠라 막부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자, 환속해 참전합니다. 그는 킨키 지방의 무사를 모아, 가마쿠라막부에 주목받아 자유로이 행동을 할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함께 싸우자!'라고 영지를 연발해, 각지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고다이고덴노에게 협력..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와카사국 타라노쇼우 잇키 발발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와카사국 타라노쇼우 잇키 발발 겐무 원년(1334년) 8월 21일, 와카사국 타라노쇼우(太良荘)에서, 백성 59명이, 지도우(地頭) 대관의 교대를 요구해 서약문을 제출하고, 잇키를 일으켰습니다. '우는 아니도 지도우에는 그친다'라고 할 정도로 가마쿠라 시대때부터 큰 권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답에 이런저런이유를 붙여 새로운 세금을 징수하거나 용수를 이용하려면 지불을 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럴때 농민들은 로쿠하라탄다이에 호소하고 있었습니다만, 로쿠하라탄다이가 멸망하고 나서는 더욱 치안이 나빠져 약탈행위가 공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와키부쿠로(脇袋)라는 지도우가 새로 부임했지만, 그는 장원내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며 자신의 집을 짓는 등의 학정을 거듭해 겐무원년..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고다이고덴노의 겐무의 신정 시작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고다이고덴노의 겐무의 신정 시작 겐코 3년(1333년) 6월 6일, 호조 다카토키 일족 멸망의 소식을 들은 고다이고덴노가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일련의 겐무의 신정이 개시됩니다. 가마쿠라막부 정권에서 그 세력을 자랑한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의 일족은 이슬과 함께 사라졌습니다.이 소식을 들은 고다이고덴노는 즉시 호키 센죠우산(船上山)을 출발해,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겐코 3년(1333년) 6월 6일 그는 교토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로쿠하라탄다이가 함락된 시점에서, 코우곤덴노(光厳天皇)를 내쫓아, 사실상 정권을 탈취하고 있던 고다이고덴노는 조속히 논공행상을 함과 동시에, 원정(院政)도, 섭관 정치(摂関政治)도, 막부도 부정한 '겐무의 신정'을 개시합니다. 우선은, 개점휴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