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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시대/역사편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막부의 멸망의 시초? 사카시타몬 외의 변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막부의 멸망의 시초? 사카시타몬 외의 변



 분큐 2년(1862년) 1월 15일, 에도성 사카시타몬(坂下門) 밖에서, 존양파인 미토번의 료닌등 6명이 로쥬우(老中) 안도 노부마사(安藤信正)를 습격해 부상시킨 사카시타몬 외의 변(坂下門外の変)이 있었습니다. 


 안도 노부마사는 분큐 2년년(1819년)에 무츠 이와키타이라(磐城平) 번의 제4대 번주 안도 노부요리(安藤信由)의 적남으로서 하이테이(藩邸)[각주:1] 코우카(弘化) 4년(1847년)에 아버지의 죽음뒤에 이어  제5대 번주가 되어 이와키번을 이어, 카에이 4년(1851년)에는 지샤봉공(寺社奉行)[각주:2], 안세이 5년(1858년)에는 와카요시도리(若年寄)[각주:3]가 됩니다. 다음해인 안세이 6년(1859년)에 당대의 다이로우(大老)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가 결행한 안세이의 대 옥사(안세이의 대 옥사)에서는, 이이 나오스케와 함께 미토번의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등을 포함한 존양파의 단속에 참여했습니다. 그 후 만엔(万延) 원년(1860년)에 로쥬로 승진합니다만, 그 직후에 일어난 것 그 사쿠라다문 외의 변(사쿠라다문 외의 변)입니다. 



안도 노부마사



 이 사건으로 암살당한 이이 나오스케의 죽음을 숨긴 것이 바로 이 안도 노부마사입니다. 사건의 뒤, 히코네(彦根)번저를 방문한 노부마사는 목을 꿰멘 나오스케의 사체를 앞에 두고, 마치 살아 있는 듯이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오스케를 중병으로 꾸민 뒤에, 차남인 이이 나오노리(井伊直憲)의 당주 승계가 된 뒤에, 사망을 발표했습니다. 만약 현역의 다이로우직에 있는 주군이 암살되었다고 되면, 히코네 번사들이 입다물고 있을리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세 대가 중 하나인 미토입니다. 초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렵부터의 대대로 이어옴 필두의 가신인 이이 가문과 세 대가 미토가 싸우게 되면, 막부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 버릴지 명약관화합니다. 그렇기에 노부마사는 재치를 발휘해 갈등을 봉합시킨 것입니다.

 나오스케의 사후, 노부마사는 역시 로쥬우인 쿠제 히로치카(久世広周)와 함께, 막부의 정치 담당자가 되어 활약합니다. 두동강이가 된 일본을 어떻게든 하나로 정리하려고한 나오스케의 유지를 이으면서, 갈등을 없애는 방법을 모색해 당대의 덴노인 제121대 코우메이덴노의 여동생 가즈노미야와 제14 대장군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를 결혼시키는 공무합체(公武合体)를 실현시킨 막부측의 사람이 노부마사입니다. 미국 영사관의 통역인 휴스켄이 양이파에 살해된 사건도 그가 처리에 임해, 원만히 해결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불리한 금은의 교환율로 이루어진 통상조약으로 돈이 유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가다듬었습니다. 



사카시타몬 외의 변



 그러나 양이파에서 보면, 통상조약을 맺고 외국과 협조를 취하고 있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공무합체라 해도 분명한 정략 결혼을 강요하고, 막부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분큐 2년(1862년) 1월 15일 오전 8 시경 죠우겐(上元)[각주:4]의 축하를 위해서 토죠(登城)[각주:5]하는 노부마사의 행렬이 사카시타 문 밖에 도달할 때 였습니다. 미토번을 벗어난 료닌 6명이 습격 했습니다. 이것이 사카시타몬 외의 변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사쿠라다몬외 변 이후, 엄중하게 된 경비를 뚫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곧 6명 모두 토벌되었습니다. 그러나, 혼란을 틈타 찌른 검이 운 나쁘게 노부마사의 등을 찔러 그는 경상을 입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이 때도 노부마사는 냉정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노부마사 스스로 사카시타몬까지 가, 상주하고 있는 번역(番役)에 경과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피가 뭍은 부정한 의복을 입고는 토죠할 수 없다'며 저택으로 돌아갑니다. 이 후, 요양 기간중에 영국 공사인 올콕과 붕대차림으로 회견한 노부마사의 모습에, 올콕은 감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적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노부마사는 뒤에서 찔린 일로 등에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무사의 수치다'라며 비난 합니다. '당당히 적을 향해야만 무사', '등의 상처는 무사의 굴욕이다'며 이미 막부에 의한 정치의 중심에서 물러나고 있던 중진적 입장의 무사들이었습니다. 결국 이것을 계기로,노부마사는 로쥬를 퇴임해 실각합니다. 매우 능력이 있었던 노부마사를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실각시킨 막부의 미래는 이미 보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1. 번주들이 에도에 두었던 저택입니다. [본문으로]
  2. 무가시대에, 절이나 신사의 영지, 인사, 잡무, 소송 등을 담당하던 부서입니다. [본문으로]
  3. 로쥬우 전의 직책으로, 하타모토(旗本)를 통괄했습니다. [본문으로]
  4. 연중 행사의 하나 [본문으로]
  5. 에도성에 무사가 근무를 위해 성에 가는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