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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노지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강지처, 오네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강지처, 오네 오네(おね)는 스기하라 사다토시(杉原定利)의 딸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출세를 함께한 조강지처 입니다. 에이로쿠 3년(1561년) 8월, 아사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시집을 갑니다. 당시에는 보통 정략결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오네와 하시바 히데요시는 연애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둘 사이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으나 아이가 없어 히데요시나 오네의 친척을 양자나 가신으로 데려왔습니다. 대표적으로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와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가 있습니다. 덴쇼 2년(1574년), 오미의 나가하마(長浜) 12만석의 영주가 된 히데요시 아래로 시어머니 나카(仲)와 함께 살게 됩니다. 그 후는 원정으로 나..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쵸쇼카베 모토치카, 하시바 군을 물리치다 사누키 평정 일본 전국시대;쵸쇼카베 모토치카, 하시바 군을 물리치다사누키 평정 덴쇼 11년(1583년) 쵸쇼카베 모토치카가 사누키 히키다효(引田表)에서 하시바 히데요시 측의 센고쿠 히데히사(仙石秀久)를 물리쳤습니다. 덴쇼(연호) 11년(1583년) 4월 21일은 시바타 가쓰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사이에 행해진 시즈가타케 전투(시즈가타케 전투)가 있었지요. 이 때 그날, 시고쿠의 히키다효에서는 다른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덴쇼 3년(1575년) 7월의 시만토가와 전투에 승리해, 토사를 통일한 쵸쇼카베 모토치카는 나머지 시고쿠의 영주들이 모리와 동맹을 맺고 있었기에,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으려 합니다. 노부나가의 측근 중 한명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가신 사이토 토시미쯔(斉藤利三)의 여동생과 모토치카가 결혼을 하기도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야마자키 전투(2) 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일본 전국시대;야마자키 전투(2)히데요시, 노부나가의 복수를 하다 덴쇼 10년(1582년) 천하의 판세를 두고 덴노산에서 야마자키 전투가 발발합니다. 혼노지의 변에서 어느덧 11일째, 아케치 미쓰히데를 보통 '삼일 천하'라고 말하지만 이런 표현이 으례 그렇듯이 딱 삼 일만 천하를 거머쥐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피눈물을 흘리며 주군의 복수를 부르짖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밑으로 오다의 세력들이 쏙 쏙 흡수됩니다. 한편의 미츠히데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키운 츠츠이 준케이도 오지 않고('호라가토게를 자처하다'), 의지하고 있던 딸 가라샤의 남편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도 참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12일에 호라가토게에서 출진한 미쓰히데는, 직속 부하 1만 6천의 군사를 이끌고 히데요시군 4만과 맞서 싸우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8) 이야에스, 서둘러 미카와로 돌아가다 이가코에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8) 이야에스, 서둘러 미카와로 돌아가다 이가코에 '혼노지의 변'의 충격적인 소식은 점차 전국으로 퍼져갑니다. 전날 우오츠성을 점령한(우오츠성 공방전) 시바타 가쓰이에와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노부나가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이틀 뒤인 6월 4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호쿠리쿠 담당 부문의 무장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상경한다는 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있던 장소는 노부나가의 세력권의 최전선인 국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부나가 사망의 소식을 들은 적은 사기가 충전하여 오다군을 토벌하려 하지요. 이런 상황은 우에노의 다키가와 가즈마스나, 시나노의 모리 나가요시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가즈마스는 1만 8천의 군사를 인솔해 우마야바시성(厩橋城)을 나와 상경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7); 노부나가의 시체는 어디있는가?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7); 노부나가의 시체는 어디있는가?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는 혼간지의 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가슴에 총탄을 맞았으므로 할복 자살했다고 하는 사람도, 저택에 불을 질러 불에 타 숨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화재가 컸기 때문에, 노부나가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오제 호안(小瀬甫庵)의 「노부나가기信長記」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을 찾았지만 전혀 발견되지 않고, 미쓰히데가 많이 수상하게 여겼지만, 유해 같은 것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또, 「대자원구기록大慈院旧記」에는, 이세의 호시아이성(星合城) 주 호시아이 노리후사(星合教房)의 아내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의 아내가 교토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히노 언덕(日ノ岡)에서,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5)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미쓰히데 결백설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5)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미쓰히데 결백설 혼노지의 변은 단 하루의 사건이지만 전국시대는 이 사건에 이전과 이후로 바뀌는 데다 의문점이 상당히 많은 사건이지요. 오다 노부나가는 사실 죽지 않았다는 설부터 이야에스가 진범이라는 설, 히데요시가 진범이라는 설도 있는데, 오늘은 아케치 미쓰히데가 범인이 아닌게 아닌가? 하는 설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혼노지의 변에서 나온 속담「적은 혼노지에 있다敵は本能寺にあり」라는 말은 에도시대에 쓰여진 「카와스미 다이코키川角太閤記」가 최초로 정작 혼노지의 변에는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이번의 마쓰히데 군의 진정한 목적이 노부나가 토벌인 것도 아케치 미쓰히데의 매우 일부의 중신만이 알고 있었다고 하나, 정말인지는 모르지요. 즉, 아케치 미쓰히데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4) 범인은 누구인가? 히데요시 흑막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4)범인은 누구인가? 히데요시 흑막설 혼노지의 변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노부나가가 반죽해논 것을 떡으로 만든 히데요시입니다. 게다가 츄고쿠로의 원군을 요청한 것도 다름아닌 히데요시이지요.(타카마츠성 공방전) 만약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 요청하지 않았으면 노부나가는 그대로 아즈치성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혼노지의 변은 일어날 수 없었겠지요. 이 히데요시의 원군 요청에 대해서는, '빗츄 타카마츠성에의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모리의 대군이 지원하러 온다는 정보가 있어, 그렇게 되면 형세가 역전할 가능성도 있기에'보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아무튼 히데요시로부터의 그 편지가, 아즈찌에 닿은 것이 5월 15일 입니다. 그리고, 타카마츠성을 구하기 위해, 깃카와 모.. 더보기
혼노지의 변(3) 범인은 누구인가? 이야에스 흑막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3) 범인은 누구인가? 이야에스 흑막설 덴쇼 10년 6월 2일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할복하고 맙니다. 반노부나가 포위망을 찟고, 전국 통일을 눈 앞에 둔 노부나가는 서쪽의 모리를 토벌하기 위해 수도로 돌아가, 6월 4일 출진을 예정하고 선봉으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저번에 썼듯이,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고 맙니다. 혼노지의 변이 왜 일어났는가?(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그리고 그 경과(전국시대의 풍운아, 혼노지에서)에 대해서 썼다면 오늘은 흑막설에 집중해 범인을 찾아 보겠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5월 30일, 교토에서 사카이로 이동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카이의 항구를 유람 하는 등 사카이 관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반달전 이야에스는 아즈치성에..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2) 전국시대의 풍운아, 혼노지에서 한 무더기 재가 되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2)전국시대의 풍운아, 혼노지에서 한 무더기 재가 되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은,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면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습니다. 이 해의 3월에 가이의 다케다를 멸한(다케다가 멸망하다) 오다 노부나가는 서쪽의 산요, 산인에 관심을 가집니다. 정확히 그 무렵, 하시바 히데요시가 인솔하는 츄고쿠 평정군은 모리의 미즈 무네하루(清水宗治)가 농성하는 타카마츠성을 포위하면서도, 좀처럼 점령할 수 없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모리의 원군이 찾아오자, 노부나가는 스스로 출진할 것을 결의해, 그 선봉으로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를 원군으로서 파견하기로 합니다. 명령을 받은 미츠히데는 5월 중순에 거성인 탄바 카메야마성(亀山城)에 들어가 출진의 준비를 갖추어, 6월 1일 오..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혼노지의 변(1) 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일본 전국시대;혼노지의 변(1) 혼노지의 변의 서막이 오르다 교토의 대궐앞에 길이 팔척( 약 110 m)의 승마장을 설치해 당대의 오오기마치 덴노의 앞에서 화려한 군사 퍼레이드를 벌인 오우마조로에(御馬揃え)에서 1년 2개월 후 오다 노부나가는 오랜만에 수도로 돌아옵니다. 이번에 노부나가는 언제나 호위 하는 기마무사들(馬廻衆)도 동반하지 않고, 얼마안되는 시동과 측근만을 데리고 숙소인 혼노지에 도착했습니다. 허나 본거지인 아즈치에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공격하는 츄고쿠 지방을 지원하기 위한 군비가 정돈되고 있었고 6월 4일에는, 그 대군을 인솔해 서쪽으로 출진할 예정이었습니다. 전날의 비가 대지를 적힌 덴쇼 10년(1582년) 6월 1일, 하카타에서 온 상인 시마이 소우시쯔(島井宗室)를 불러 노부나가는 명 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