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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우지야쓰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 관동의 패자, 후 호조 가문 일본 전국시대 가문편;관동의 패자, 후 호조 가문 전국시대의 가장 큰 특징인 '갑작스런 출세'를 온 몸으로 체현한 가문이 둘 있으니, 바로 사이토 가문(사이토 가문)과 후 호조 가문입니다. 호조 가문의 성립, 호조 소운의 활약 사실 일본사에서 호조 가문은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전기의 호조 가문은 덴노와 권력투쟁을 했을 정도로 강성한 힘을 가진 가문이었습니다. 이와 구별하기 위해 전국시대의 호조가문은 전기의 호조가문과 비교하기 위해 '후호조 가문' 이라고 부릅니다. 호조 가문을 일으킨 것은 이세 신쿠로 나가우지(伊勢新九郎長氏)로, 후에 '호조 소운'이라고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생전에는 스스로를 '호조 소운'이라고 자칭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혼란을 막기 위해 호조 소운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소운..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다케다가와 호조가의 대결; 미마세 고개의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다케다가와 호조가의 대결; 미마세 고개의 전투 에이로쿠 12년(1569년) 귀국 중의 다케다 신겐의 군을 호조 군이 미마세고개에서 기습한 '미마세고개의 전투(三増峠の戦い)'가 있었습니다. 키요스 동맹을 깨고 이마가와가로 쳐들어간 신겐은 스루가를 얻게 됩니다.(이마가와관 공방전) 당연히 이 신겐의 행동을 본 사가미의 호조가는 경계의 태도를 드러내고 군사를 움직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충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다음해 에이로쿠 12년(1569년), 신겐은 이제 사가미에 원정을 개시합니다. 신겐은 가이에서 출진해, 시나노로 우회해, 우에노를 거치고, 무사시로 이동해 거기서 사가미로 들어갑니다. 게다가 후호조의 지성인 하치가타성(鉢形城), 타키야마성(滝山城)을 견제하며 남쪽으로 이동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이마가와 멸망하다(2) 카게가와성 공방전 에이로쿠 11년(1568년) 요전날의 슨푸 이마가와관의 공방전에서 다케다 신겐에 쫓겨 도토미에 도망친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공격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카케가와성을 포위했습니다. 에이로쿠 11년 말, 신겐이 가이에서 스루가로 진공(삿타토우케 전투)하는 것과 동시에, 이에야스는 미카와에서 도토미로 진공을 개시했습니다. 다음해에, 도쿠가와군에 의한 카케가와성 공방전이 개시합니다. 성주인 아사히나 야스모토(朝比奈泰朝)는 이마가와의 중신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에서의 굴지의 지장입니다. 도쿠가와측의 공격은 신통찮고 3월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이에야스 자신이 총대장이 되어 카케가와성 공방전에 참가합니다. 그때까지 도쿠가와의 공격을 잘 막고 있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