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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다카토키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닛타 요시사다, 타카우지 토벌군으로 출진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닛타 요시사다, 타카우지 토벌군으로 출진 겐무2년(1335년) 11월 19일, 아시카가 타카우지 토벌 명령을 받은 닛타 요시사다가 교토에서 출진 했습니다. 겐코 3년(1333년) 5월 길게 정권을 잡고 있던 호조 가문의 제14대 쇼군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와 가마쿠라막부를 끝내 겐무의 신정을 개시 한 고다이고덴노였지만,(겐무의 신정) 그 신정은 귀족이나 문신에 치우쳐져 있어, 실제로 막부를 토벌한 공로가 있던 무사에게는 은상이 적어 양자의 갈등은 깊어집니다. 이런 가운데 죽은 다카토키의 유아인 호조 토키유키를 옹립해 스와 요리시게가 호조 복권을 위해 나카센다이의 란을 일으켰습니다.(나카센다이의 란) 이를 진압하러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움직이게 됩니다만, 조건으로 '정이대장군(쇼군..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나카센다이의 난 발발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나카센다이의 난 발발 겐무 2년(1335년) 7월 23일, 죽은 호조 다카토키의 아이 타카유키를 필두로 가마쿠라막부 부흥을 목표로 한 반란인 나카센다이의 란으로, 반란군이 가마쿠라를 점거했습니다. 막부군은 전면 항복했습니다만, 마음 속에 '막부 부활'의 뜻을 숨기는 사람이나, 간신히 소수로 탈출해 반란을 획책 하는 사람들은 남아있었습니다. 호조 다카토키에게는 3명의 남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카토키의 유우시(猶子)로 종가에 들어가 있던 하루토키(治時)는 7월 9일에 처형됩니다 친자인 장남 쿠니토키(邦時)는, 아버지에게서 '호조 재흥'의 꿈을 맡아 백부인 고다이 이인노 무네시게(五大院宗繁)에 맡겨집니다만, 그가 스스로의 보신을 위해서 쿠니코키를 팔았기 때문에 포박 되어 5월 28일..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호조 다카토키 할복, 가마쿠라막부 멸망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호조 다카토키 할복, 가마쿠라막부 멸망 겐코 3년(1333년) 5월 22일, 닛타군의 공격에 의해 카마쿠라가 불타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등이 할복해 호조 가문이 멸망했습니다. 고다이고덴노가 아쿠도우(悪党)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의 조력을 얻어 가사기산에서 군사를 일으켜 겐코의 변을 발발시키는 것도 실패에 끝나(겐코의 변), 겐코 원년(1331년) 아카사카성(赤坂城)에서 분전 하고 있던 마사시게가 성을 탈출하고, 고다이고덴노가 오키로 도망친 것이 겐코2년(1332년)의 일입니다. 8개월 후 겐코의 변 때 가사기산에서 탈출하고 있던 고다이고덴노의 황태자 모리요시 친왕(護良親王)이 재기를 도모하고 요시노산에 들어가, 전국을 향해 막부 토벌의 영지를 발하자, 행방을 감추고 있던 .. 더보기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로쿠하라탄다이 멸망, 432명 할복 일본 무로마치시대 역사편; 로쿠하라탄다이 멸망, 432명 할복 겐코 3년(1333년) 5월 9일, 로쿠하라탄다이의 북방을 맞는 호조 나카토키가, 일행 432명과 함께 할복했습니다. 제14대로 집권한 호조 다카토키(北条高時)가 사실상의 실권을 잡은 가마쿠라 막부에 대해,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와 함께 막부 토벌의 봉화를 든 제 96대 고다이고덴노(後醍醐天皇)에게 막부군은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高氏)를 불러 견제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덴노측에 서기로 마음을 정한 뒤였습니다. 교토로 들어가 사면에서 공격을 시작하는 군세에, 로쿠하라 탄다이는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패퇴합니다. 결국 로쿠하라 탄다이의 북방을 맡던 나카토키는 관동을 향하기로 합니다.(타카우지 입경) 로쿠하라를 뒤로 한 나카토키 일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