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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시대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야시마 전투(4) 단노우라 전투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야시마 전투(4) 단노우라 전투 분지 원년(칸랴쿠 4년 1185년) 2월 19일은, 겐페이 쟁란의 절정인 '단노우라 전투'가 있었습니다. 호겐의 난(호겐의 난)으로 인해 본격화된 타이라 가문의 독주는 지쇼 삼년의 정변(지쇼 삼년의 정변)으로 본격화 되었습니다. 천도하고, 자신의 자손을 덴노로 세우는 타이라의 폭주에 모치히토왕이 발한 선지가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호쿠리쿠에서는 키소노 요시나카가(이시바시산 전투), 가마쿠라에서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군사를 일으킵니다.(요리토모 발기) 이에 타이라 가문은 그들을 무찌르려 하지만, 오히려 대패해 결국 키소노 요시나카는 입경합니다. 쇼군직까지 오르기는 하지만(요시나카 쇼군 등극) 고시라카와 법황과의 갈등으로 결국 요리토모에게 토.. 더보기
일본 헤이안 시대 역사편; 겐페이 전투(2) 우지바시 전투 일본 헤이안 시대 역사편;겐페이 전투(2) 우지바시 전투 지쇼4년(1180년) 5월 26일, 겐페이 전투의 개막 우지바시 전투(宇治橋合戦)가 있었습니다. 이 전투에 진 미나모토노 요리마사(源頼政)는 뵤됴인(平等院)에서 할복 했습니다. 지쇼 원년(1177년) 5월 '시시가타니 음모(시시가타니 음모)'로 불리는 '반 타이라'의 싹을 사전에 자른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清盛)는 이윽고, 딸 토쿠코가 낳은 아이를 불과 3세에 안토쿠덴노(安徳天皇)로 즉위시켜, 타이라 가문은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절정기일수록 '타도 타이라'의 세력도 높아집니다. 이윽고 고시라카와 법황의 아들로, 계승권은 훨씬 위에 있지만 번번히 밀린 모치히토왕(以仁王)과 미나모토노 요리마사(源頼政)가 접촉하게 됩니다. 그리고 '타이라 토벌의.. 더보기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 미나모토노 요시모토 욕탕에서 암살당하다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편;미나모토노 요시모토 욕탕에서 암살당하다 헤이지2년(1160년) 1월 4일, 앞의 헤이지의 란에서 패배했던 미나모토노 요시토모가, 오와리국 노마에서 모살되었습니다. 카와치 겐지(河内源)의 동량인 미나모토노 타메요시(源為義)의 장남인 요시토모(義朝)는 아버지가 교토에서 조정의 용병으로서 활약하는 가운데, 대대로 계승한 영지인 사가미국 가마쿠라에서 자랍니다. 여기를 거점으로 겐지 대대로 이어온 유서 깊은 호족들을 따르게 해 그가 20대가 되자, 칸토 남부 일대에, 큰 세력을 가지기까지 됩니다. 그가 기나이에서 멀어진 것은, 아버지 타메요시와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아, 의절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본거지를 떠나고 교토에 있는 일이 많은 아버지 대신 현지 관동을 지배하고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