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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뇨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 천하재패의 제일의 장애물, 나가시마 잇코우잇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노부나가 천하재패의 제일의 장애물, 나가시마 잇코우잇키 겐키2년(1571년)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에게 대항한 나가시마 잇코우잇키에 대해 공격을 시작 했습니다. 이시야마 전투가 발발해 이시야마혼간지와 노부나가가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켄뇨의 격문은 이세의 나가시마의 원증절의 조금도 종문도에게도 닿습니다. 이세 나가시마(長島)는 기소가와, 나가라가와, 이비가와라고 하는 3개의 강이 합류해 이세만에 유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이 삼각지를 고리와 같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와쥬우(輪中) 지대로 불렸습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함께 치수공사를 해서 서로간의 협력 체제가 강고하고, 지역의 결집이 단단했습니다, 그들을 한군데 묶는 것이 바로 간쇼지(願証..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10년간의 이시야마 전투 드디어 종결하다 일본 전국시대; 10년간의 이시야마 전투 드디어 종결하다 덴쇼 8년(1580년) 혼간지 켄뇨가 퇴거한 뒤에도 농성을 계속하고 있던 교뇨(教如)가 이시야마 혼간지를 퇴거해 10년에 이르는 이시야마 전투가 종결했습니다. 제11대 법주 켄뇨의 오사카에 위치한 이시야마혼간지는 매우 거대했습니다. 고에이도우(御影堂)를 중심으로 하는 혼간지의 가람들을 일본어 코(コ)의 글자처럼 6개의 혼간지 내의 마을들이 둘러싸, 각각의 마을은 혼간지에 세금을 납입하는것 외에는 자유로운 자치 제도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어, 그 주민은 1만명을 넘는 수였다고 합니다. 천하를 노리는 노부나가에게 그의 지배하에 들어가지 않는 혼간지와 그 문도들은 골칫거리였지요. 게다가, 혼간지 신자에 의한 잇코우 잇키는 농민이 죽창을 든 오합지졸이 아니..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다 수군의 설욕전, 제 2차 키즈가와구 해전 일본 전국시대;오다 수군의 설욕전, 제 2차 키즈가와구 해전 덴쇼 6년(1578년)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의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 제2차 키즈가와구 해전이 있었습니다. 반노부나가 동맹도 거진 반 깨어질 무렵, 새로이 참전한 모리 데투모토의 1차 키즈가와구 해전( 키즈가와구 해전)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격을 안겨줍니다. 결국, 노부나가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철갑선을 만들어가지요. 때마침 우에스기 겐신이 죽어(겐신 사망) 에치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노부나가는 이시야마혼간지와 모리로 타겟을 정합니다. 하지만 돌연 아리오카성의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가 반기를 들어 버립니다. 아리오카성은 혼간지에서 가까운 성이기 때문에 오다군이 해상을 봉쇄해도, 육로에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자 노부나가는 급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