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시대 절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오다 노부나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다? 겐키2년(1571년) 오다 노부나가가 히에이잔 렌라쿠지를 토벌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승려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전국시대의 승려) 히에이잔 렌라쿠지는 12세에 출가한 사이쵸(最澄)가 렌라쿠 4년(785년)에 승려의 자격을 얻은 직후 히에이잔에 입산합니다. 그 후, 코우닌(弘仁) 14년(823년)에 렌라쿠지로 이름을 바꾼 천태종의 총본산입니다. 이 당시 절은 단순히 종교기관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와 종교아 완전히 구분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절은 많은 승병을 거느리는 군사 세력이기도 했습니다. 제72대 시라카와덴노는 심지어'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카모강의 물의 흐름, 주사위의 눈 그리고 히에이잔의 승병이다'라고 했다고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 전국시대의 전투는 백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2)전쟁 뒤의 백성의 삶 일본 전국시대 전투편;전국시대의 전투는 백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2) 전쟁 뒤의 백성의 삶 약탈과 제부전 전투에 승리한 영주는 적지에서의 약탈을 용인했습니다. 부하들에게의 전쟁의 포상을 내리는 것이지요. 식료나 금전, 가구등 여러가지 물건이 약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전장에는 인신매매를 하는 상인이 있었기에, 잡은 포로들을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영지를 손에 넣은 영주는, 마을에 대한 지배권을 강하게 하기 위해, 자군의 약탈에 대해 금제를 내, 마을의 안전을 보장했습니다. 하지만, 금제가 없는 마을에서 약탈을 하는 것은 적대 영주의 영지에의 공격이기에 용인되고 있었습니다. 또 비사문천의 화신, 우에스기 겐신 이야기를 하자면, 그가 자주하던 짓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약탈하는 아시가루(足軽)를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직업편; 종교적 지도자이자 스승이자 병사였던 승려 일본 전국시대 직업편;종교적 지도자이자 스승이자 병사였던 승려 전국시대의 승려의 지위는 지금은 완전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승려는 영주나 지방 권력자에 뒤떨어지지 않는 권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전국시대에 종교는 지금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옥이나 극락, 신이나 불의 가호를 진심으로 믿고 있었고, 요괴나 신령, 귀신과 오니 등 온갖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것들을 설명해 주는 '불교'의 위치는 장난이 아니게 높았습니다. 게다가 교육이 부재해 무지몽매한 백성들에게 불교를 통해 여러 이념이나 사상을 습득하고 있는 승려들은 사람을에게 '스승님'이며 '상담자'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절은 절의 역할 뿐만이 아니라, 교육기관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