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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조선과 관계수복의 노력, 포로송환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조선과 관계수복의 노력, 포로송환 게이쵸 5년(1600년) 3월 2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데라자와 히로타카(寺沢広高), 소 요시토시(宗義智)등이 조선에 강화를 요청해, 포로 160명을 송환했습니다. 아마쿠사 제도를 포함한 히고 4군의 영주 고니시유키나가, 나가사키 봉행인 데라자와 히로타카, 대마도 주 소 요시토시의 영지는 모두 조선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의 처리의 주도를 그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의 야욕이 낳은 조선 침략은 두 차례에 걸쳐 실패하고, 결국 히데요시가 세상을 떠나(임진왜란 종결) 그 유언에 따라 철퇴하게 됩니다.그리고 일본 내의 정세가 급변해 포로 송환이 이루어진 게이쵸 5년 중에 세키가하라전투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임진왜란이 종결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임진왜란이 종결하다 게이쵸 3년(1598년) 11월 20일, 끝까지 주둔하던 시마즈 부대가 철퇴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두번째 일으킨 한국 침략 정유재란(게이쵸의 역)이 종결 했습니다. 호조의 오다와라성을 점령해(호조가 멸망), 오슈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를 부하로 삼아(오다와라성에서 히데요시를 만나다) 드디어 천하를 수중에 넣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모한 조선 침략을 개시합니다. 분로쿠 원년(1592년)부터 분로쿠 2년에 걸친 제1차 한국 침략, 임진왜란(분로쿠의 역)이 휴전한 뒤 강화회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경한 히데요시는 14만의 대군을 다시 조선에 보내 침략을 개시합니다. 명의 원군뿐만아니라 조선 각지에서 발발하는 의병에 일본군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임진왜란 서막의 불협화음, 우메키타의 란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임진왜란 서막의 불협화음, 우메키타의 란 분로쿠 원년(1592년) 6월 15일, 사츠마 유노오(湯之尾)의 지도우(地頭) 우메키타 쿠니카네(梅北国兼)가 사시키성(佐敷城)을 습격해 빼앗았습니다. 우메키타의 란, 혹은 우메키타 잇키로 불리는 임진왜란 중에 일어난 반란입니다. 먼저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쵸의 역 이라고 부른는 임진왜란은 조선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또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나중에 연표에 사건만 표시하고 지나가고, 기회가 된다면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임진왜란 기간에 일본에 있었던 사건 위주로 서술하려 합니다. 분로쿠 원년(1592년) 4월 13일,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히젠 나고야성(名護屋城)에 거점을 두고, 차례 차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 전국시대에 등장하는 조선 여인, 오타아 쥬리아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전국시대에 등장하는 조선 여인, 오타아 쥬리아 오타아 쥬리아(おたあジュリア)는 조선의 여인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임진왜란은 조선에 크나큰 상처를 입히고 많은 이들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운명이 바뀐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오타아 쥬리아입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크리스천 무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미녀였던 그녀를 보고 일본으로 데려가 버립니다. 유키나가의 부인역시 크리스천인 '쥬스타'였는데, 그녀의 인도로 일본이름인 '오타아'와 세례명인 '쥬리아'를 받습니다. 하지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유키나가가 처형됩니다. 하지만 이 조선에서 온 미소녀에 대한 소문은 도쿠가와 이야에스의 귀에도 들어가지요. 이야에스는 그녀를 시녀로 삼았습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