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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 하코다테 전쟁(1)전쟁의 서막, 미야코만 해전 일본 유신시대 역사편;하코다테 전쟁(1)전쟁의 서막, 미야코만 해전 메이지 2년(1869년) 3월 25일, 에조 공화국 탄생 직후 에노모토 다케아키 등이 신정부군의 군함 코우테츠(甲鉄)를 빼앗으려고 해 발발한 미야코만 해전이 있었습니다. 작년 4월 신정부는 막부측에 에도성의 명도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근신 그리고 군함의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다키아키는 카츠 가이슈의 설득에 따라 일단 군함을 인도했지만,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는 최신예의 군함 카이요우마루 이하 8척의 군함과 함께 에도를 탈출해 막부측 인사들과 함께 북쪽을 목표로 했던 것입니다. 불과 1, 2개의 번에 의해서 일이 결정되는 것은 이상하기 때문에 막부 세력을 위해서라도 에조지를 개척한다는 뜻을 가슴에 품고 연료 보급,..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오다 수군의 설욕전, 제 2차 키즈가와구 해전 일본 전국시대;오다 수군의 설욕전, 제 2차 키즈가와구 해전 덴쇼 6년(1578년) 오다 노부나가와 이시야마 혼간지의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 제2차 키즈가와구 해전이 있었습니다. 반노부나가 동맹도 거진 반 깨어질 무렵, 새로이 참전한 모리 데투모토의 1차 키즈가와구 해전( 키즈가와구 해전)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격을 안겨줍니다. 결국, 노부나가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철갑선을 만들어가지요. 때마침 우에스기 겐신이 죽어(겐신 사망) 에치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노부나가는 이시야마혼간지와 모리로 타겟을 정합니다. 하지만 돌연 아리오카성의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가 반기를 들어 버립니다. 아리오카성은 혼간지에서 가까운 성이기 때문에 오다군이 해상을 봉쇄해도, 육로에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자 노부나가는 급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