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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코쿠지 엔케이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세키가하라 전투(22) 서군의 거물들 처형당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세키가하라 전투(22) 서군의 거물들 처형당하다 게이쵸5년(1600년) 10월 1일, 앞의 세키가하라의 싸움으로 패자가 되어, 그 후, 잡힌 이시다 미쓰나리등 세 명의 처형을 했습니다. 요전날의 세키가하라의 전투(세키가하라 전투 발발)의 뒤에 도주해, 이부키산에서 잡힌 서군의 이시다 미쓰나리(이시다 미쓰나리 체포되다), 고니시 유키나가(고니시 유키나가, 자수하다), 안코쿠지 에케이의 세명의 처형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으므로 할복하지 못하고 자수 했습니다. 하지만 이시다 미쓰나리는 왜 할복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를 교토까지 호송한 혼다 마사즈미(本多正純)가 도중에, '전투에 진 이상, 깨끗하게 할복 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바보 취급해 ..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모리 데루모토, 히로시마성에서 출진하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모리 데루모토, 히로시마성에서 출진하다 게이쵸5년(1600년) 7월 15일, 삼봉행(三奉行)의 연서장(連署状)을 받은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오사카로 향해 히로시마성을 출진했습니다. 게이쵸 3년(1598년) 어린 히데요리를 오대로와 오봉행에게 맡겨, 도요토미 히데요는 죽었습니다.(히데요시의 유언) 마에다 토시이에가 중재하던 동안은 어떻게든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도요토미 가신단의 톱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가를 경시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두고볼 수 없었던 오봉행의 한 사람인 이시다 미쓰나리는 이에야스를 배제할 결의를 굳힙니다. 이것이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입니다. 게이쵸5년(1600년) 정월에, 오대로의 한 명인 우에스기 키게카츠가 연하 인사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