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겐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우에노하라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우에노하라 전투 코우지 3년(1557년) 가이의 다케다 신겐과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이 다시 한번 격돌한 3차 가와나카지마 전투인 우에노하라 전투(上野原の戦い)가 있었습니다. 제 2차 가와나카지마의 전투는 강화(사이카와 전투)로 끝났었지요. 이 이후 겐신은 뜬금포를 발사하고 출가를 결의하는 반면 신겐은 강화를 찢어, 시나노 북부에의 진공을 재개합니다. 게다가 겐신의 가신인 오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와 내통해 엣츄(越中)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오오쿠마 엣츄의 난은 신속하게 진압되고 실패에 끝납니다. 이어서 신겐은 앞의 강화의 조건으로 영지가 안도되고 있던 우에스기측의 고쿠진들에게도 반란을 종용해 겐신의 세력에 혼란을 증가시킵니다. 가족의 배반과 신..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 신겐의 측실, 오부라카와 부인 일본 전국시대 여성 인물편;신겐의 측실, 오부라카와 부인 오부리카와부인 (油川夫人)은 쿄우라쿠(享禄) 원년(1528년)또는 텐몬 5년(1536년) 태어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가이국지」에 따르면 오부라가와 노부모리(油川源左衛門信守)라고 합니다. 그녀는 신겐의 측실로 많은 자녀를 남겼습니다. 니시나 모리노부(仁科盛信), 카츠라야마 노부사다 (葛山信貞), 마쓰히메(松姫) 그리고 키쿠히메 (키쿠히메)를 낳았으며, 마리히메(마리히메)도 오부리카와 부인의 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의 라이벌인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은 스스로를 비사문천의 화신이라 생각해서 였는지 평생 여자를 범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술은 왕창 먹어, 일설에는 술로 인한 뇌질환으로 죽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는..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영주편; 가이의 범, 다케다 신겐의 수수께끼 일본 전국시대 영주편;가이의 범, 다케다 신겐의 수수께끼 역사는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기에,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전국시대도 예외는 아닌데요, 오늘은 다케다 신겐의 수수께끼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초상화의 수수께끼 다케다 신겐의 초상화로 널리 알려진 위의 초상화가 사실은 신겐의 초상화가 아니지 않나 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는 39세에 출가해 삭발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위의 그림에는 아직 구렛나룻이 남아있지요. 그리고 옷이나 칼의 가문 문장이 다케다의 히시몬(菱紋)이 아니고, 아시카가나 하타케야마가 쓰던 후타츠비키료우몬(二引両紋)입니다. 게다가 후방에 있는 새는 노토(能登)의 새이지요. 그래서 상기의 이유들로 하타케야마 요시쓰구(畠山義続)의 초상이 아닌가 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