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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중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를 패퇴시킨 사이가중, 단가가와 전투 일본 전국시대 역사편; 노부나가를 패퇴시킨 사이가중, 단가가와 전투 덴쇼 5년(1577년) 오다 노부나가가 사이가 공격을 개시하자, 스즈키 마고이치(鈴木孫一)가 그에 맞서 싸웠습니다. 10년 이상이나 오다 노부나가와 항전을 계속한 제11대 법주 켄뇨를 중심으로 하는 이시야마혼간지의 근본에는 '싸워 서 죽으면 극락 왕생할 수 있다' 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열광적인 신도에 의한, 죽음도 불사하는 병사들과 거기에 협력한 무장 집단의 존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모리의 무라카미 수군이 제1차 키즈가와구 해전에서 노부나가를 격퇴하지요. 한편, 그런 수군과 함께 혼간지를 지지한 것이, 사이가중이 대량의 총과 사격 기술이었습니다. 사이가중은 기노카와 하류 지역에 사는 토착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당시의 기슈(紀.. 더보기
일본 전국시대; 고마키나가쿠테 전투(3) 나카무라 이치우지의 분전, 키시와다성 공방전 일본 전국시대;고마키나가쿠테 전투(3) 나카무라 이치우지의 분전, 키시와다성 공방전 덴쇼 12년(1584년) 3월 22일, 오다 노부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호응 한 사이가 네고로 잇키가 이즈미 사카이 오오사카에 진출을 사도했으나 키시와다(岸和田城)성 성주 나카무라 이치우지(中村一氏)에 격퇴되었습니다. 덴쇼 10년(1582년) 6월 2일, 천하를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혼노지의 변)에서 죽은 뒤에, 야마자키 전투(야마자키 전투)로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해 주군이 원수를 갚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그 뒤에 열린 오다의 계승자를 결정하는 키요스 회의(키요스 회의)를 유리하게 진행시켜 후계자를 본인이 추천하는 노부나가의 손자 산포시로 결정하고 후견인이 됩니다. 물론 이에 오다의 가로 시바타 가쓰이에, .. 더보기